검색어 입력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정,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인식,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민대표회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국, 대한민국임시정부 정당통일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애국금제도,모스크바자금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5 한글파일한글 (hwp) | 22페이지 | 가격 3,000원

목차

Ⅰ. 서론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정

Ⅲ.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인식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민대표회의

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통국

Ⅵ.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당통일운동
1. 만주사변과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2. 정당통일운동 세력 대(對) 임시정부 옹호세력

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애국금제도

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모스크바자금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임시정부에 대한 연구는 80년대 후반의 성과를 대체로 발전?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국사편찬위원회?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 정부 기관이 자료집?논문집을 계속해서 발간한 것과 중국학자들의 자료 공급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정부 기관으로. 우선 국사편찬위원회는『한민족독립운동사』13권 가운데 제7권을 임시정부편(1990)으로 발간하여 80년대까지의 연구 성과를 일단 정리하였다. 그리고『한국독립운동사』자료 20-31권을 임정편(5-16)으로 발간하였는데, 이 12책의 자료집은 주로 1940년대 재미 한인들의 동향이나 미국전략첩보국(OSS)의 정보문서를 집중적으로 공개한 것이고, 이 분야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中國關內韓國近現代關係資料』는 흩어져 있던 중국지역 자료 가운데 귀중한 것을 발굴하여 학계에 소개한 것인데,《우리通信》이라는 잡지를 비롯하여 상해잠편지대와 중앙대학 한인입교생, 국민정부군사위원회의 관계자료 등이 실려 있다.

<중 략>

한형권은 국민의회의 파리강화회의대표였던 고창일의 협력을 받아 독일의 베르린 주재 소련대사관을 통하여 자금을 확보하고 유럽을 거쳐 상해로 돌아왔으니 1921년 11월경의 일이다. 한형권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세력들의 각축은 치열했다. 상해파 역시 옛 한인사회당원인 한형권이 자파에게 자금을 내놓을 것을 바랬다. 임시정부는 앞서의 40만루블은 이미 소진되었으니, 새로 가져온 20만 달러를 내놓으라고 하였다. 임시정부에도 고려공산당에도 자금을 내놓을 수 없게 된 어려운 처지에 빠진 한형권은 결국 자금을 함께 운반한 고창일 및 윤해 등 국민의회 인사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국민대표회주비위원회에 자금을 쓰도록 했다. 임정측은 모스크바자금의 책임자로 알려진 김립과 한형권이 자금을 내놓게 하기 위하여 테러단을 조직하였다. 이와 함께 상해임정는 1922년 1월 26일자로 이동휘와 김립에 대한 성토문을 냈고, 김상옥을 시켜 윤해의 암살을 시도했으며, 마침내는 김립을 암살하였다.
여기에서 덧붙일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상해, 이르쿠츠크 양파 고려공산당이 나머지 국제공산당자금 140만 루블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상해임정측이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즉, 상해임정은 1921년 중반 모스크바자금을 획득하기 위하여 외무차장 이희경을 주러시아 대사로서 안공근과 함께 파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비에트정부가 당초 상해임정에 약속했던 차관의 나머지 160만 루블의 확보를 위한 3파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와 함께 상해임정은 국무회의를 열고 이동휘가 파견하였던 한형권의 즉각적인 소환을 결의하였다.

참고 자료

김영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과 그 이념, 삼균학회, 2006
김영수, 대한민국 임시정부헌법과 그 정통성, 한국헌법학회, 1995
이연복,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위상, 한국민족운동사학회, 1999
이연복,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그 변천, 경희대학교사학회, 1982
한시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 삼균학회, 2006
한시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기념일, 바로잡아야, 한국근현대사학회, 2008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