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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청년운동,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노동운동,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학생독립운동,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주화운동) 분석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5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청년운동

Ⅱ.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노동운동

Ⅲ.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학생독립운동

Ⅳ.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화운동)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광주지역(광주광역시)의 청년운동

1920년대에 접어들어 전국적으로 청년운동단체가 급속하게 양산됨에 아울러 광주지역에서도 청년단체가 연이어 조직되었다. 1920년 최초로 ‘광주청년회’(이하, ‘광청’으로 약칭함)가 결성된 데, 이어 ‘광주기독교청년회’와 ‘송정청년회’가 결성되었다. ‘광주청년회’와 ‘광주기독교청년회’는 광주군 일원의 일반 청년과 기독교 청년을 각기 조직 대상으로 삼았다. 반면 ‘송정청년회’는 명칭에서 시사하듯이 송정면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후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면 면 단위에서 청년단체가 활발히 조직되며, 노동․농민 청년의 직업별 청년단체도 등장하였다. 지역별․직업별 청년단체는 광주 사회운동의 양대 진영인 ‘광주노동공제회’와 ‘광주청년회’ 활동가들의 경쟁적인 노력의 소산이었다. 여성들만의 청년단체도 결성되었는데, ‘광주여자청년회’와 ‘광주여자기독교청년회’가 바로 그것이다. 두 여성 청년단체는 각기 ‘광주청년회’와 ‘광주기독교청년회’의 자매단체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각계각층 청년들의 조직화가 진전되면서, 이들 단체를 통일적으로 지도할 기관의 등장이 절실하게 요청되었다. 이리하여 1926년 2월 군내 청년단체의 연합기관인 ‘광주청년동맹’이 결성되었다. ‘광주청년동맹’은 1927년 11월 지역별․직업별 각 청년단체의 해체를 전제로 출범하였다. ‘광주청년동맹’에는 종래 경쟁관계에 있던 ‘광주청년회’ 계열과 ‘광주노동공제회’ 계열의 모든 청년단체 회원은 물론, ‘광주기독교청년회’ 등 종교적 청년단체 회원들도 가입하였다. 이로써 광주 청년운동은 조직적 통일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광주에는 ‘신우회’라는 사회주의 비밀 서클이 활동하고 이었다. ‘신우회’는 1923년경 비밀결사로 창립되어 유물사관 등 신사상을 연구해 오다, 1925년말 공개단체로 전환하였다. 공개 이후 확인된 신우회원은 강해석을 비롯해서 강석봉․지용수․김갑수․김광진․김재명․최한수 등이었다. 이들 사회주의 청년들이 ‘광청’ 혁신을 주도하게 되는 시기는 1923년 후반부터였다. 1923년 9월 임시총회에서 강해석의 형인 강석봉이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사실은, 그를 총회 주재자로 밀어 올릴 정도로 사회주의 청년들이 결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주의 청년들은 1924년 4월 5일의 제4회 정총을 통해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때 개선된 집행위원은 최한영(서무부), 최춘열․전도(재무부), 최장전․장여규(지육부), 문태곤․전용기․강석봉(사회부), 김종수․조창준(체육부)의 10명이었으며, 의사원은 지용수 외 10명이었다. 이들 사회주의 청년들이 서무부․재무부․사회부 및 의사기관에 고루 포진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이 ‘광청’의 조직 장악을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 자료

김성보, 광주학생운동과 사회주의 청년·학생조직, 한국역사연구회, 1989
박찬승, 전남지방의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호남사학회, 1995
유경남, 광주항쟁시기 '광주' 지역의 표상과 광주민주시민의 형성, 전남대학교, 2008
오재일 외 1명, 5·18광주민중항쟁 자료의 분류 및 활용방안,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02
정근식 외 1명, 1920-30년대 광주지역의 노동운동,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1992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관련명칭의 용례와 의미, 문화체육관광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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