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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루시 침략’에 대한 각 사료간의 서술 비교와 이유 분석

저작시기 2012.04 |등록일 2013.04.14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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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몽골은 분열되어 혼란스럽던 끼예프 루시를 침략하여 그들을 정복하고, 킵차크 한국을 건국하여 그들을 지배하게 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Fact)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역사학자들은 서로 다른 시각으로 위의 사실을 해석하여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몽골의 루시 침략 및 정복, 그리고 점령의 유산에 대해 그들이 각기 어떻게 다르게 평가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석의 차이와, 다른 해석이 나온 이유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제일 먼저 출판된 역사서는 플라토노프의 <러시아사 강의(1917)>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플라토노프가 ‘루시에 대한 타타르 권력의 영향’에 대한 본격적인 서술에 앞서 ‘우리 역사에서 이 우연에 대해서는 연구가 불충분한 편이어서 타타르 멍에의 역사적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명확하고 확정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라는 복선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중 략>

또 랴자노프스키는 몽골인들이 러시아 역사에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가져왔다는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반박을 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그러나 이런 제한적인 몽골의 영향 중 많은 것들에 대해서조차 단서를 달아야 한다. 인구조사 및 몽골의 도로와 더불어, 몽골인들의 재정 분야의 조치들은 러시아의 중앙집권화 과정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그러나 (중략) 최대한 많은 공물의 징발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며 그 자체로는 러시아인들에게 유리하지도 않았고 지속적이지도 않았다.’라든가, ‘침입자들이 우수성을 보여주었던 군사적인 분야에 관해서 말하면, (중략) 러시아의 군대와 전술은 끼예프의 보병으로부터 직접 발전된 것이지 몽골의 기병대로부터는 아니었다. (중략) 우편제도를 도입한 것에 대하여, 혹은 여성들을 집안의 분리된 장소에다가 격리시키는 관습을 도입한 것이 대하여, 단지 제한적인 역할만 인정받을 만하다. 진정한 우편제도는 17세기가 되어서야 서구로부터 러시아에 도입되었다. (중략) 몽골인들은 (중략) 끼예프의 관례에 의지했을 따름이었다. 물론 그들은 이런 관례를 폭넓게 시행했고, 교통 분야에서 러시아인들에게 몇 가지 단어들을 물려주기는 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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