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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무당][굿][화랭이][이용우][조한춘][이충선]무가의 정의, 무가의 종류, 무가의 역사, 무가의 특성, 화랭이 이용우, 화랭이 조한춘, 화랭이 이충선, 화랭이 오수복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2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개요

Ⅱ. 무가의 정의와 종류
1. 정의
2. 무가의 종류
1) 서정무가
2) 교술무가
3) 서사무가
4) 희곡무가
3. 무가의 구연방식

Ⅲ. 무가의 역사

Ⅳ. 무가의 특성

Ⅴ. 화랭이 이용우
1. 출생, 학습과정
2. 이종만 당굿의 전수

Ⅵ. 화랭이 조한춘

Ⅶ. 화랭이 이충선
1. 제1기
2. 제2기
3. 제3기

Ⅷ. 화랭이 오수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첫째,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굿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때에 관심이 높다는 것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굿이 그 지역의 대표적인 굿처럼 여겨져서 그 굿이 상당한 세력권을 형성한다는 의미이다. 대표적인 예가 충남 태안군 황도리에서 거행되는 봉기풍어제이다. 1983년 김금화 만신이 소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독자적으로 무녀가 굿을 진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김금화 만신이 풍어제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러다 보니 황도리와 인근한 서산시 부석면 창리 영신당에서도 김금화 만신을 당주로 모시려고 했으나 날짜가 같아 가지 못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황도 봉기풍어제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 봉기풍어제는 정월 초사흗날에 제의가 시작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지만 초이튿날부터 제의를 시작했는데 이 또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금화 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 략>

오수복은 이 집안에서 잘 자랐다. 스스로 말하기를 호의호식하면서 곱디곱게만 자란 셈이다. 그러다가 오수복의 나이 18세에 김해 김씨 집안으로 출가하게 된다. 시댁은 용인군 기흥면 용수골에 있었다. 경주 김씨의 남편과 신혼살림을 시작하면서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김응식, 김영숙, 김미선 등이 이들이다. 현재(1998년) 이들의 나이는 첫째가 57세, 둘째가 54세, 셋째가 52세이다.
그런데 오수복의 남편인 경주 김씨가 염병을 앓다가 왜정시대에 죽게 된다. 오수복의 나이 29세 때의 일이다. 오수복은 자식들을 기르기 위해서, 그리고 해수병을 앓는 시어머니와 2남 2녀나 되는 경주 김씨 가문의 식구들을 구명도생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오수복이 했던 일로 떡장사, 옷장사, 기름장사, 미군빨래일 등을 위시해서 동가숙 서가식하는 봇짐장사도 어지간히 했다고 전한다.
오수복이 갖은 고생을 다해서 얻은 것은 얼굴에 노란 꽃이 피는 병이었다.

참고 자료

김태곤 - 한국무가연구,1 :무가의 전승실태, 한국민속학회, 1994
김헌선 - 경기도 도당굿 화랭이 이용우(1899년-1987년)의 구비적 개인사, 한국구비문학회, 1994
김헌선 - 경기도 도당굿 화랭이 연행자 연구 : 광주 이충선과 수원 오수복을 예증삼아, 한국구비문학회, 1998
박경신 - 한국 무가의 역사적 전개, 한국구비문학회, 1997
윤동환 - 동해안 필사본 무가의 존재양상과 기능적 특성, 한국무속학회, 2007
전형대 외 1명 - 경기도 지역 화랭이 무가 연구 : 조한춘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구비문학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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