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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2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서론

Ⅱ. 일본외교의 특성

Ⅲ. 일본외교의 성격

Ⅳ. 일본외교의 변화과정
1. 러일협약(1907년7월) ~ 파리강화회의(1919년1월)
2. 워싱턴회의(1921년11월) ~ 만주사변(1931년9월)
3. 만주사변(1931년9월) ~ 삼국동맹(1939년9월)

Ⅴ. 일본외교의 변화요인
1. 국제환경적 요인
2. 국내정치적 요인

Ⅵ. 향후 일본외교의 전망

Ⅶ.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일본의 주권회복을 위한 전승국과의 강화문제는 요시다 내각의 최대 현안중의 하나였다. 요시다 수상은 미국의 점령이라는 현실과, 미국 주도하의 국제경제체제 속에서의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고려하여 국내의 단독강화론과 전면강화론의 대립 속에서 단호하게 미국측 입장인 단독강화론을 선택하였다. 이에 대하여 사회당 좌파를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국가들과의 강화조약체결은 소련을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녔으나 요시다는 이를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는 강화조약이 조인되는 동시에 미일안보조약도 체결되면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의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최소한의 안보비용만을 지출하고도 안전보장이 담보되며 나머지는 경제회복을 위해서 투자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가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미국․영국과의 유대관계는 일본의 번영을 촉진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그리고 사실상 유일한 길일뿐이다.’라는 그의 언급 속에서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시다와 미국 측은 분리된 평화조약이 바람직하다는 데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만 일본의 장래를 보는 시각은 서로 상이하였다. 미국 측은 이 조약을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우위를 보장하며, 나아가서는 아시아에서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중심축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를 가진데 반하여, 요시다는 이를 앞으로의 경제발전과 해외진출을 위한 기초작업으로 보았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평화조약 체결 후 일본의 군사적 안전보장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즉 일본을 지키고 아시아의 공산세력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서 일본에 미군기지를 두는 것에 요시다는 동의하였으나 일본 스스로 재무장해야 한다는 미국 측 제안에는 반대한 것이다. 재래식으로 다시 무장하는 것은 경제회복을 위태롭게 할 뿐더러 핵무기체제하에서는 전혀 효과 없는 방법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더욱이 요시다의 생각으로는 일단 국제적 위기가 발발했을 경우에 일본을 지키기 위하여 미군은 올 것이므로 새로운 일본군을 창설해봐야 이는 일본보다는 미국에 더 유용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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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근형(2002), 일본 외교정책의 변화와 미일관계, 제주대학교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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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2011), 현대 일본 외교의 변용과 한일협력, 한울
전진호(2010), 일본의 동아시아 구상과 일본외교, 한국일본근대학회
첨곡방수 외 1명(2004),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와 일본외교, 한국개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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