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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불상][부처][절][원불교][신흥불교][대승불교][격의불교]불교의 성격, 불교의 목적, 불교의 유입, 불교의 목표, 불교의 인간관, 불교의 사찰, 불교의 대중화 분석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2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서론

Ⅱ. 불교의 성격과 목적

Ⅲ. 불교의 유입

Ⅳ. 불교의 목표

Ⅴ. 불교의 인간관

Ⅵ. 불교의 사찰

Ⅶ. 불교의 대중화
1. 원효
2. 진표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불교는 다른 종교와 확연히 구별되는 독특한 종교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인도 정통파 사상의 아트만을 부정하는 무아설이라든가, 형이상학적 희론(戱論, prapanca)을 부정하는 무기설 등은 그 대표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초기 경전에 설해진 최상 법문으로서의 십이연기설은 이러한 불교의 종교적 입장에 대해서도 가장 체계적이고 심오한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 먼저 무아설에서부터 살펴보자. 일체가 무아라는 판단은 앞서 삼법인설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일체는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운 것은 무아"라는 근거에 입각한 것이다. 따라서 무상하고 괴로움이라는 것이 그 이유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아설은 완전하고 철저한 무아설에 이른 것은 아니다. 왜 그러냐면 앞서 삼법인의 무아설에서도 소개한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체법이 무아라면 이 중에 어떤 나가 있어서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다고 말하고 있는가?"<잡아함 권 10> 무아라고 하지만 현재 나는 분명히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 의혹을 일으켰던 찬타 비구에게 다음과 같은 해답이 베풀어지고 있다. "세간의 집(集, 발생)을 여실하게 바로 보면 세간이 없다는 견해가 있을 수 없고, 세간의 멸을 여실하게 바로 보면 세간이 있다는 견해가 있을 수 없다. 여래는 그 두 끝을 떠나 중도에서 설한다."<잡아함 권 10>고 한 다음, 곧 십이연기설이 설해지고 있다. 세간(loka)이라는 말은 세계가 일체라는 말과 동의어로서, 무아설의 `아`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런데 그러한 세간은 무명에서 연기한 것이므로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연기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정적으로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왜 그러냐면 실재성이 없는 것을 실재한다고 착각한 망념에서 연기한 것에서 실체가 있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러한 무명에서 연기한 것은 무명의 멸과 함께 없어지는 성질의 것이다. "세간의 멸을 여실히 바로 보면 세간이 있다는 견해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이 뜻을 가리키고 있다. 불교 무아설의 최승(最勝)한 뜻(parama-artha)은 바로 이런 곳에 있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강하게 집착하고 있는 나에게는 실재성이 없으므로 무아인 것이다. 그러나 이 무아는 망념에 입각한 나까지도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찬타비구가 제기했던 `알고보고 말하는 그 나`는 바로 이러한 나(妄我)라고 볼 수가 있다. 따라서 불교의 무아설은 유와 무의 두 끝을 떠난 중도적인

참고 자료

김정빈 / 불교문화와 상식, 솔바람, 2009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 계율과 불교윤리, 조계종출판사, 2011
태경, 조기영 / 알기쉬운 불교용어 산책, 양사재, 2011
피터 하비 저, 허남결 역 / 불교윤리학 입문, 씨아이알, 2010
한용운 저, 이원섭 역 / 불교대전, 현암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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