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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일본국왕사의 조선통교

저작시기 2013.04 |등록일 2013.04.11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조선전기 일본국왕사의 조선통교

목차

Ⅰ. 머리말
Ⅱ. 15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책과 조일외교의 성립
Ⅲ. 일본국왕사의 통교추이
Ⅳ. 일본국왕사의 통교목적
Ⅴ. 일본국왕사의 변질과 위사문제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조선전기 한일 양국은 활발한 사절의 왕래를 통해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히 중앙정권인 조선국왕과 막부장군 간에는 대등한 교린관계에 입각하여 왕래하였으며, 조선에서는 막부장군에게 통신사·회예사·보빙사를 18회, 막부장군은 조선국왕에게 일본국왕사를 70회 파견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조선전기(조선의 건국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한 사절인 일본국왕사를 3가지 측면에서1) 실증적이고 종합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Ⅱ. 15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책과 조일외교의 성립
14세기 말 주원장이 원을 명망시키고 명을 건국하면서 동아시아는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되었다. 일본 역시,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약 60년간 지속된 남북조의 혼란기를 통일하고 실정막부라 칭하였는데 1401년 명에 사신을 파견하여 사대관계를 요청하였고, 이에 명의 성조는 1403년 아시키가 요시미쓰를 ‘일본국왕’에 책봉하면서 조공체제에 편입되고 감합무역을 허락하였다. 한반도 역시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였으며 명과 사대외교체제를 성립하게 된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외교관계는 왜구문제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조선에서는 왜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회유책과 외교적인 노력을 병행하였다. 태조(이성계)는 일본에 승려를 파견하여 왜구의 금지를 요청하였으며 아시카가 요시미쓰 역시 이에 호응하여 왜구의 금지와 피로인의 쇄환을 명하였다. 이는 조선정부가 막부장군과 행한 최초의 외교적인 교섭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가와 국가 간의 대등한 교린외교가 아니었으며 대등한 외교관계가 정식으로 성립된 것은 1403년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명의 책봉을 받고2) 중국 중심의 외교질서인 조공체제에 편입되면서부터이다. 명의 책봉은 양국의 외교체제에 커다른 변화를 의미하였는데, 이때부터 조선에서는 막부장군을 일본국왕이자 정치·외교권의 주체자로 인식하였으며, 또한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기존 질서 속에서 우호린국으로 인식하였다. 결국 이때부터 조선과 일본은 국가 대 국가 간의 대등한 관계가 성립하였으며 관계가 급진전 되었고, 사신의 왕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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