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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제

저작시기 2012.04 |등록일 2013.04.10 워드파일MS 워드 (docx) | 5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서론

Ⅱ본론
1. 진시황제
2. 영화로 본 진시황제

Ⅲ결론

본문내용

● 서 론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제만큼 전중국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준 인물이 또 있을까? 중국사를 스쳐간 수많은 인물들 중 내가 진시황제를 보고서의 주인공으로 택한 이유는 이것 하나로 충분했다. 그는 잔인했지만 또한 엄청난 능력가였다. 진시황을 천하 통일과 제도 정비의 명군으로 볼 것이냐 살인 취미와 불로장생 환각의 폭군으로 볼 것이냐는 역사를 재해석하는 영원한 뫼비우스의 띠이다. 나는 ‘시황제 암살’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진시황제가 명군이냐 폭군이냐 라는 이분법사고에서 벗어나 진시황제도 한 여인을 사랑하고 과거의 소박한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에 집중하여 생각해 보았다. 거대한 제국을 통일할 만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진시황제이지만 그도 인간이기에 당연히 연약하고 인간다운 모습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진시황제의 여러 업적들에 대해서도 연구해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중국의 여러 유명한 유적 가운데서도 진시황제에 의해 만들어진 만리장성, 진시황릉 등은 가히 중국을 대표하는 유적이라 부를 수 있다. 지금도 인공위성에서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인공 구조물이라는 1만 2천 7백리의 만리장성, 사치의 상징으로 거명되는 길이 6백 90m, 폭 1백 14cm의 아방궁, 무수한 호화유적을 남긴 진시황제의 무덤 (높이 약 70여 m, 동서 약 6백 m, 남북 2백여 m), 그 외에도 무수한 건축물들이 진시황제에 의해 조성되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규모일 뿐 아니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이 유적들은 당시 진시황제가 상상이상의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만약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현재 유럽처럼 여러 나라로 나뉘어져 있을 것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대륙을 통일하기 이전에는 중국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전의 역사서에 나타나는 중국이라는 단어는 단지 ‘나라의 중앙’ 또는 ‘수도’라는 뜻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대륙 통일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같은 나라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대륙의 사람들에게 생겨났다. 그로 인해 삼국 분립의 시대나 남북조 분열의 시대에 중국인들은 그것을 이상사태로 생각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http://ko.wikipedia.org/wiki/%EC%A7%84_%EC%8B%9C%ED%99%A9%EC%A0%9C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7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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