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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전의 경제사적연구

저작시기 2011.03 |등록일 2013.04.05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1894년의 상황
2. 갑오농민전쟁을 바라보는 좌 ․ 우파의 시각
3. 4월 혁명 이전
4. 4월혁명 이후
5. 남은과제

Ⅲ.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1894년 농민봉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던 유학자 매천 황현은 이를 ‘비란(匪亂)’, ‘역모(逆謀)’라 하였고, 농민군에 대해서는 ‘동비(東匪)’, ‘적(賊)’, ‘사란작적자(思亂作賊者)’라고 칭하였다. 이것은 황현 혼자의 생각이 아니고 1894년 사건을 바라보는 당시의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물론 대다수 농민들은 농민봉기를 정당한 행위로 인식했지만 그들의 생각은 제대로 표출될 수 없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같은 사건을 ‘농민전쟁’, ‘농민혁명’이라 부르고 “우리 역사상 최고 최대의 반봉건 ? 반외세 항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한 역사적 사건에 주어질 수 있는 최상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100년이라는 길지 않은 역사의 시간이 흐른데 비해 한 사건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이처럼 극단적으로 변화했다.

<중 략>

‘정치권력’과 ‘민중’의 이원적인 인식양상은 90년대 들어 해소되었다. 항쟁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던 인식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함에 따라 90년대에는 각종 기념행위가 봇물터지듯이 이루어졌고, 각 방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농민혁명은 ‘자주근대화를 위한 민중의 혁명운동, 민족민중운동의 원천, 현재에 계승해야 할 정신’으로 대중 속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농민혁명에 대한 인식과 자세가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역주민은 농민혁명의 가치에 공감하면서도 자신과는 관련없는 일로 인식하고, 정부는 농민군의 반일항쟁을 서훈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기념사업 주체들의 의욕적인 노력이 전개되고 있지만, 농민혁명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은 지금도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기념사업의 추진주체들도 농민혁명에 내재된 가치를 면밀히 읽어내고 의미를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알려진 내용, 표면적으로 나타난 현상대로 인식하고 타성적인 방식으로 기념하는데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농민혁명에 대한 인식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간의 왜곡을 떨쳐내고 이제 막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한 단계가 아닌가 한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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