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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론과 조일수호통상조약

저작시기 2011.03 |등록일 2013.04.03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서론
Ⅱ. 정한론이란?
Ⅲ. 정한론의 대두와 그 배경
Ⅳ. 정한론의 영향
Ⅴ. 조일수호조약의 구체적 내용
Ⅵ. 조일수호조약의 결과
Ⅶ. 결론
Ⅷ.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서론
정한론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먼저 일본의 메이지유신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언급이 있어야 하겠다. 메이지유신 당시인 19세기말에는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이 치열한 시기였고, 당연히 일본에도 이런 열강의 손길이 뻗쳐오게 된다. 여기서 일어난 개화운동이 메이지유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국 내의 힘이 커지자 구미 열강의 영향을 받아서 외교노선을 침략으로 바꾸기 시작함에 대두되었던 것이 정한론이었으며, 본론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Ⅱ. 정한론이란?
정한론이란 한마디로 사이고 다카모리를 비롯하여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 유신 정부 요인들이 주장한 `조선에 대한 군사 침략 계획`을 말한다. 원래 정한론은 초슈 번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키도 다카요시가 일찍이 메이지 초기부터 주장했던 발상으로써 막부 말기 보신전쟁에 동원된 군사력을 전용하는 방책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넓게 보면 실전을 통해 축적된 전투기술과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대외침략을 기도하였던 16세기 임진왜란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중 략>

또, 일본은 국가적인 내전이 끝나면 논공행상에 필요한 부족한 토지를 확보하고 실전을 통하여 축적된 전투기술, 즉 넘치는 전투력을 밖으로 분출하기 위하여, 대외침략을 기도했는데 그 대상은 한반도였다. 16세기에 천하 통일을 한 도요토미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나, 19세기에 명치혁명의 내전이 끝난 후에 정한론이 크게 대두된 것도,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몰수 있겠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수립 후 조선이 대외전략의 요충지임을 중시하고 조선의 우위의 입장에 서서 조선과의 국교를 수립하고자 의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조선 전략은 내부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쉽게 수립되지 못하였고, 일본은 잠시 방향을 돌려서 당시 조선의 우위에 있던 청나라를 먼저 지배하는 쪽을 택한다.
청국은 일찍이 일본의 해군력에 위협을 느끼지만, 종주국으로서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과 조선의 수호조약 체결을 방조했다. 또한 영국 등 서양 열강도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면서 서양열강을 대신하여 일본이 평화적으로 조선을 개항하게 만들 것을 지지했다.

참고 자료

「일본근대사」, 강동진 저, 한길사, 1985
「일본인이 쓴 일본의 역사」, 이노우에 키요시 저, 차광수 역, 대랑서림, 1995
「일본사여행」, 황인영 저, 일본문화연구센터, 1995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 가토 요코 저, 태학사, 2003
「이야기로 배우는 일본의 역사」, 기쿠 고조 저, 고려원미디어, 1995
「정한론과 조선인식」, 장용걸 저, 보고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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