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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허문화와문자의기원

저작시기 2012.02 |등록일 2013.04.02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1.서론

2.은허문화
1)은허문화 발굴과정
2)은허문화 시기 구분
3)소둔촌(小屯村) 궁궐 기초 집단
4)서북강(西北岡) 후가장(候家莊) 대묘(大墓)
5)부호묘(婦好墓)

3.은허문자의 기원 [갑골문(甲骨文)]

4.결론

본문내용

1.서론
상(商)왕조 후기 반경(盤庚)이 은(殷)으로 천도한때부터1) 상 왕조가 멸망한 시기까지의 유적지가 안양(安陽)의 은허이다.
30㎢에 달하는 은허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은 그 숫자는 물론이고 종류도 다양하다. 궁전 터와 10여 군데 능묘, 10여만 점의 갑골, 1천만점 되는 동기(銅器), 석기(石器), 도기(陶器), 옥기(玉器), 골기(骨器), 각(角:뿔), 방(蚌: 진주가 되는 조개), 아(牙: 상아) 등 유물이 발견되었다.
유물 발굴 과정과, 은허의 시기구분 문제,후가장 대묘, 부호묘, 갑골문자를 통해 은허문화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2.은허문화

1)은허문화 발굴과정
1928년~1949년 12년 간에 열다섯 차례 은허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항일 전쟁과 국공 내전이 발발하자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던 은허 발굴 작업도 일단 중지된 상태가된다.
신 중국이 성립된 후인 1950년 봄, 중국과학원 고고연구소가 발족되자 가장 먼저 은허 발굴 작업을 재개하였다. 1958년부터 중국과학원 고고연구소에 안양 고고공작대가 조직되었고, 1959년 공작참(工作站)이 설립되어 은허에 대한 장기적이고 연속적인 발굴 작업과 연구가 진행되었다. 1961년 국무원은 은허를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하였다.
1958~1699년까지 보호 구역 내에서 안양 고고대의 발굴 작업은 한번도 중지된 적이 없었으며, 청동기를 제작하던 유적지를 비롯하여 원형의 제사갱, 거마갱(車馬坑), 골기 제작 터 등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폭팔하자 은허 발굴 작업도 중지되었다. 이후 1969년 작업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이후 30년 은허에서 대규모 발굴 작업을 진행하면서 유적지와 유물을 발견했다. 특히 부호묘(婦好墓)의 발견은 안양 은허의 발굴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6년 5월~ 2000년 11월 하상주 단대공정 프로젝트로 하상주 시대구분에2)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참고 자료

웨난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하상주 단대공정』, 일빛출판사, 2005
김경호, 심재훈, 민후기, 최진문 지음 『하상주 단대공정 -중국 고대문명 연구의 허와실』, 동북아역사재단, 2008
尹乃鉉 지음, 『商周史』, 民音社, 1984
張光直 지음, 尹乃鉉 옮김, 『商文明』, 民音社, 1989
尹盛平 지음, 김양수 옮김 『신권의 일천년 2권 상·주시대』,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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