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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읽는 한국사 (에이플 받은 자료)

저작시기 2012.04 |등록일 2013.04.01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신라와 당나라의 전쟁 (한반도를 차지하라)
후삼국전쟁 (통일 신라의 몰락)
고려의 북진정책 (고려와 거란의 전쟁)
고려와 여진과의 전쟁 (동북 9성을 개척하다)
고려와 몽골의 전쟁 (팔만대장경과 삼별초)
병인양요 (열가의 침략과 함께 시작되다)
한국전쟁 (민족상잔의 비극)

본문내용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에 야심을 본격화하였다. 여기서 비롯해서 나·당은 점차 갈등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통일전쟁 초기부터 당이 신라에 대한 부당한 처사는 계속 있어왔다. 나당 연합군이 이뤄지기 전에 당나라는 고구려는 당나라가 차지하고, 백제의 옛 영토는 신라에게 주기하였는데 그것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백제의 옛 영토에 당나라군 만 명을 대기시키고, 백제의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세우고, 고구려의 옛 땅에는 안동 도호부를 세우고 신라의 땅에 계림도독부를 세워 한반도 전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마치 신라가 당나라의 통치를 받는 점령지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당 전쟁 전개

<중 략>

남·북간의 갈등
8월 15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가해지자 일제는 마침내 연합국에게 항복을 하면서 갑작스럽게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독립의 기쁨을 만긱하기도 전에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는데 한국의 독립문제를 두고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5년 동안 신탁통치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두고 남한의 민족지도자인 김구나 이승만 등은 전국 애국 단체 연합회를 만들어 한국의 신탁통치에 대해 맹렬하게 비난하였다. 처음에는 북한 공산당에서도 신탁통치에 반대하다가 하루아침에 소련의 영향을 받아 신탁통치에 찬성하였다. 이때부터 남한과 북한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따라 미·소 공동위원회가 개최되어 논의하였으나 매번 견해차이로 중단되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이루어지게 되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북한에서도 뒤이어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남·북한은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6·25 전쟁
6·25 한국 전쟁의 시작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완벽한 기습이었다. 그 당시 북한의 남침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신설되지 얼마 않 되어 경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정보 능력도 부족해서였다. 미국은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고 있어 한국전쟁이 있을 거라고 어느 정도 예측은 하였지만 미국이 한반도를 전략적으로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였기 때문에 전쟁 초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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