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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과 일본의 대한정책 - 외교와 사상을 중심으로

저작시기 2013.03 |등록일 2013.03.31 | 최종수정일 2016.07.19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러일전쟁과 일본의 대한정책 - 외교와 사상을 중심으로 [러일전쟁 일본 외교권 박탈, 러일전쟁 개전론 추이]에 관한 자료 입니다.

참고하셔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

목차

1. 들어가며
2. 일본 내 개전론의 추이
3. 러일전쟁 시기 일본의 외교권 박탈
4.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러일전쟁은 한국과 만주 지역을 두고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벌이던 신경전이 정점에서 표출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두 국가는 전쟁을 벌이면서도 자국 영토 안에서는 피해가 하나도 없었고, 전쟁이 끝난 다음의 전후 처리에 있어서도 자국 외의 문제를 중심으로 타협을 했다는 측면에서 다른 전쟁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쟁의 와중에 한국은 일본에 의해서 보호국화의 길을 걷게 되었던 만큼 마냥 타국 사이에 있었던 남의 일로만 넘겨짚을 수는 없다. 러일전쟁이 어떠한 배경과 맥락 하에서 발생하게 되었고, 전쟁을 통해서 둘러싼 환경과 상황 그리고 조건이 어떻게 바뀌어 나갔는가에 대해서 냉철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소리이다.
이 글에서는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전 시기부터 전쟁이 끝난 후 한국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하게 되는 韓日協商條約(제2차 한일협약, 을사조약 등으로도 지칭)을 체결하게 되기까지 일본이 외교상으로 어떠한 정책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는가를 주로 개전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며, 일본 내부적으로는 전쟁이 발발할 당시 어떠한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이 당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던 아시아주의를 중심으로 하여 각종 연구성과들을 참고해 가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일본 내 開戰論의 推移
일본이 전쟁이라는 수단을 선택하게 된 과정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외교정책을 실제로 구현해 가는 內閣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의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내각에 영향을 끼쳤던 在野의 여론 동향과 그것의 수렴 과정이다. 러일전쟁에 대한 개전론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갔는지는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참고하여 정리해 보도록 한다. 그리고 이 두 부분의 근저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사상적 기반으로서의 “아시아주의”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1) 內閣에서의 외교노선 변동 과정 의화단사건이 일어났던 시기부터 러일전쟁이 발발하기까지 일본 내 정책결정자들의 정세 인식과 대응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똑같지는 않았고, 정치에 등장한 세대별로도 대응양상이 상이했다는 측면에서 세분화시켜 접근하면서 일본의 대외정책을 설명하는 최근의 연구자로는 조명철을 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전반적으로 그의 글을 많이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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