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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의 생활상태, 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의 사회, 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의 경제인식,사상단체

저작시기 2013.03 |등록일 2013.03.30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Ⅰ. 개요

Ⅱ. 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의 생활상태
1. 노동자 모집과 조선인 취업상황
2. 임금구조와 노동자의 생활
3. 노동조건과 재해
4. 조선인의 주거상황

Ⅲ. 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의 사회

Ⅳ. 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의 경제인식

Ⅴ. 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의 도일사

Ⅵ. 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의 조직화과정
1. 해방직후의 재일한국인사회
2. 재일조선인연맹(朝聯)

Ⅶ. 재일한인(재일유학생,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의 사상단체
1. 흑도회
2. 흑우회와 북성회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이끌어 내지 못한 전후 청산의 미흡에서 출발하는 재일동포의 고통을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나마 먼저 풀어내자는 운동이 꿈틀대고 있다. 바로 한국 국민에게 잊혀진 존재, 조국에서 버림받은 존재인 재일동포에게 국민의 기본권인 조국 참정권을 되찾아 주자는 운동이 그것이다. 아직 본격적인 단계에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재일동포문제에 관심이 많은 경북대 김영호 교수, 고려대 배손곤 교수, 이건우 공생을 위한 산다(일본지명)시민의 모임 부회장, 박계동 의원 등이 주축이 된 10여명이 1995년 말부터 ‘재일국민의 조국참정권 회복을 위한 시민연대’ (약칭 조국참정권 시민연대) 준비모임을 구성해 적극적인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이 모임의 실무간사를 맡고 있는 백병규 <미디어 오늘>편집부장은 “지난해 9월경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한 재일 동포에게서 자신의 여권이 한국 정부에서 발행한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고, 재일교포 2,3세가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데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았다” 고 하면서 이 모임에 참가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 략>

이에 비해, 김약수백무김종범 등 볼셰비즘 지향세력은 新瀉縣 사건을 계기로 9월 在日本朝鮮人勞動者情況調査會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이들은 北海島와 九州에 대한 실지조사를 벌이는 한편, 노동자 학대의 참상을 보고하는 대회를 열었다. 또 이들은 사망자에 대한 장례를 치러주는 한편, 각지의 후원과 당국의 대책을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조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11월 東京에는 朝鮮勞動同盟會를 조직하였다. 이어 11월 2일 김종범과 김약수는 북성회 대표를 칭하고 大阪의 宋章福池健弘 등을 만나 연락관계를 맺었다. 이를 통해 12월 1일 大阪에서는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朝鮮勞動同盟會가 결성되었다.
北星會 핵심인물 김약수는 이미 1922년 11월부터 日本共産黨의 추천에 의해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遠東部 산하의 꼬르뷰로(高麗局) 성원으로 들어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 공산진영은 12월 26일 東京 시내 모처에서 ‘北星會 結成’의 행사를 치른 후, 1월초부터 宋奉禹의 주간 아래 기관지 斥候隊를 발간하였다. 이어 4월 17일에는 朝鮮靑年會館에서 사상강연회를 열어 시위를 벌이는 등 공식활동에 들어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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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국 외 1명(2007) - 재일조선인문학의 민족성의 변용과 그 행방, 일본어문학회
나주현(2006) - 1950년대 재일조선인 사회의 통일운동, 성균관대학교
박정이(2010) - 한국병합과 재일조선인 이주 양상, 한일민족문제학회
정희선(2006) -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 운동(1945년-1955년) 연구, 강원대학교
정혜경(2002) - 1920년대 재일조선인과 민족운동,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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