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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국주의][일본]일본군국주의와 신군국주의, 일본군국주의와 군사력증강, 일본군국주의와 평화헌법, 일본군국주의와 안보정책, 일본군국주의와 역사교육, 일본군국주의와 무사도문화

저작시기 2013.03 |등록일 2013.03.30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개요

Ⅱ. 일본군국주의와 신군국주의

Ⅲ. 일본군국주의와 군사력증강

Ⅳ. 일본군국주의와 평화헌법

Ⅴ. 일본군국주의와 안보정책

Ⅵ. 일본군국주의와 역사교육

Ⅶ. 일본군국주의와 무사도문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워싱턴체제의 동북아 국제정치질서는 관동군의 돌발적인 만주침략에 의해 대대적인 판도 변화의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유조구사건을 시발로 드러나기 시작한 노골적인 일본의 만몽(滿蒙)장악 시도는 괴뢰국 만주국의 건국(1932년 3월), 국제연맹의 탈퇴(1933년 2월), 중일전쟁의 개시(1937년 7월), 대동아신질서 선언(1938년 11월), 독일ㆍ이태리와의 삼국동맹(1939년 9월)이라는 태평양전쟁 돌입까지의 일련의 주요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군 주도의 군국주의ㆍ제국주의 팽창 정책의 첫 걸음이었다. 아시아 제패를 향해 돌진하는 이 시기 일본의 대외정책은 미일간의 무력 대결 즉, 1941년의 태평양전쟁을 충분히 예상케 하는데, 이는 만주사변 발발 시점에 이미 미국과의 결전을 각오하고 그 대비책으로서 만주와 몽고의 점령 필요성을 제기한 관동군의 논리에서 이미 명백히 밝혀져 있었으며, 이러한 만몽 구상을 바탕으로 하는 관동군의 독주를 추인하는 육군의 태도에서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중 략>

청일 전쟁부터 대동아 전쟁을 걸쳐서 현대까지 보면 일본인들은 천황을 매우 숭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일본인들이 천황을 숭배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막부 정권까지 천황은 오직 상징물뿐이었으며 쇼군(將君)의 노리개감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많은 천황들은 쇼군들이 대주는 생활비로 버텨야 했으며 어떤 천황은 쇼군이 앙심을 품고 생활비를 대주지 않아 굶어죽었다고 한다. 이러한 천황의 지위가 올라간 것은 기껏해야 메이지 유신(明治維新)때의 대정봉환(大政奉還-1867년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는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했다. 자세한 것은 뒤에서 다룬다.)부터이다. 그 때까지도 천황의 지위는 어디까지나 입헌군주제 아래에서의 군주였을 뿐이다. 천황이 신의 아들로서 추앙 받게 된 것은 군부가 권력을 잡고 청일 전쟁을 시작할 때부터이다. 군부는 천황에 대한 은혜와 의리를 내세워 국민을 교육시켰고 전장으로 내몰았다. 천황에 대한 지극한 숭배-천황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은혜를 갚기 위하여-이것은 군부가 무사도 문화를 이용한 한 대표적 예라 하겠다.

참고 자료

노다 마사아키 외 1명, 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길
박진우, 근대 천황제와 일본 군국주의, 한국역사연구회, 2000
박충석, 일본군국주의의 형성 :그 정치·사회적 기원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2000
정창석,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 :그 식민지에의 적용, 한국일본문화학회, 2007
주섭일, 아시아 안보를 위협하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한다, 한국자유총연맹, 1999
하종문, 군국주의 일본의 전시동원, 한국역사연구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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