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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시기 2013.03 |등록일 2013.03.30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Ⅰ. 식민지와 식민지자본주의
1. 식민지적 본원적 축적
2. 1920년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이식/발전과 30년대 이래 독점/중화학공업의 발전

Ⅱ. 식민지와 식민지민족주의

Ⅲ. 식민지와 식민지지배(식민지배)

Ⅳ. 식민지와 식민지일본인

Ⅴ. 식민지와 식민지종교정책

Ⅵ. 식민지와 식민지능금정책
1. 조선총독부의 능금정책
2. 지방정부의 능금정책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식민지와 식민지자본주의
1. 식민지적 본원적 축적
20세기에 들어와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가 성립되면서 제국주의지배-(신)식민지 종속이라는 국제적 생산관계가 확립되었고 제국주의 독점자본에 의해 식민지/종속국에 이식자본주의의 길이 강요되었다. 조선에서도 조선말 봉건사회의 동요와 해체 속에서 17세기 이래 18세기 중엽에 걸쳐 상품-화폐경제가 발전하고 18세기말-19세기 초에는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을 기반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맹아적으로 발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876년 개항에서 시작되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정에서 이러한 발전은 외래자본에 의해 질식되고 이식자본주의의 발전의 길이 시작되었다. 일제는 식민지권력기구를 기반으로 하여 식민지 수탈을 위한 여러 제도를 정비하고(화폐정리사업, 근대적 신용체계 정비, 식민지적 재정체계 확립, 동양척식회사를 통한 토지수탈 등)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근대적인 소유권제도를 법률적으로 확립하고 봉건적 토지소유권을 최종적으로 해체하였는바, 이러한 조처들은 한편에서 농민층분해를 촉진시키면서 농민을 토지로부터 분리시켜 임노동자층을 형성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화폐자본의 축적을 가능케 하는 본원적 축적의 주요한 과정이었다.

<중 략>

역시 1916년에도 경상북도는 ‘능금의 면충구제에 관한 도령(道令)’을 발포하여, 면충 및 개곡충의 구제에 전력을 다하였는데, 당시의 주요한 피해처치법은 벌채소각, 석회수 침지(浸漬), 채종유 유제, 다루합제의 도포, 석유유제, 제충국 가용석유유제, 석회소황합제의 살포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1917년경부터 심식충이 발생하였고 1921년 12월에는 그 창궐이 극에 달하였다. 그 외에도 능금의 축과병, 갈반병, 탄저병 등이 발생하여 경상북도는 과수재배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여러 차례 보조금을 지급하였다.

참고 자료

기유정(2011) :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과 지역 의식의 정치효과, 한국정치학회
김동명(2003) : 한국 병합과 식민지 지배, 일본사학회
김승태(2006) : 일제의 식민지 종교정책과 한국 기독교계의 대응 : 1931년~1945년,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정일(1990) : 식민지초기(1910년-1915년) 농장형 지주제의 실태에 관한 연구, 경희대학교
임규택(1968) : 식민지민족주의의 기본성격과 방향, 동국대학교
정태헌(2000) : 1910년대 일제의 식민지 자본주의 체제 구축 과정,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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