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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시기 2013.03 |등록일 2013.03.29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고구려시대의 불상

Ⅱ. 백제시대의 불상
1. 한성기 양식으로써 그 예가 바로 신리출토 금동불좌상이 아닐까한다
2. 웅진기는 중국양과의 외교관계를 통하여 불교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문화를 꽃피웠을 뿐더러 이러한 발전된 문화를 일본에 전파(513년과 516년 등)하기도 하였다
3. 사비기는 다시 세분하여 제3기로 나눌 수 있다

Ⅲ. 신라시대의 불상

Ⅳ. 삼국시대의 불상

Ⅴ. 고려시대의 불상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고구려시대의 불상

삼국중 불교를 가장 수용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일찍부터 대륙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의 수용과정에 있어서 별다른 마찰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불교조각은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불교전래 이전의 고분의 벽화나 고구려의 문화수준을 고려해볼 때 불교조각에 있어서 역시 고구려의 문화역량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남아 있는 고구려의 불교조각은 너무도 그 수효가 적어 고구려 불교조각의 진면목을 알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 등 외세와의 많은 전쟁을 치른 것을 고려해볼 때 전란의 혼란속에서 많은 불교조각들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미뤄 짐작이 간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372년. 즉 4세기말경부터는 중국에서 불상들이 전래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상들이 고구려 불상의 모델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5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 불상은 아쉽게도 없다.
석불의 경우 고구려의 석불로 주목되는 것은 <청원 비중리 삼존석불 >과 충북 제원 출토 <납석제 병립상>등을 들 수 있다.

<중 략>

통일신라 말기의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고 건국한 고려는 새 왕조의 건국이 불력(佛力)에 의하였다고 믿어 국교로 정하였기 때문에, 전시대에 이어 많은 사원이 건립되고 불상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불상에 대한 예배를 경시하고 선종의 유행으로 불상조각에 대한 의욕이 상실되어 정신면에서 나약해지고 표현능력도 퇴보하고 있다.
불상의 양식은 대체로 신라양식을 계승하였으나 삼국시대의 신비성이나 통일신라시대의 이상을 향하는 깊이 내재한 성격은 자취를 감추고 현세의 인간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당진에 있는 영탑사(靈塔寺) 금동삼존불상(金銅三尊佛像)의 본존은 육계가 작고 얼굴모습이 정돈되었으나 온화할 뿐 개성이 부족하다. 광주(廣州)의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의 육계는 매우 크고, 나발이 작으나 총총하게 박혀 있으며, 귀는 어깨 위까지 늘어졌고, 날카로운 콧등에서 연장된 눈썹선은 아름다우나 입이 매우 작다. 높이가 2.88m에 이르는 대불로서 가는 허리에 무릎은 넓고, 향마촉지인 등 통일신라의 불상양식에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표현기법도 능숙하고 주조기술도 뛰어나 고려초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참고 자료

김명식(1982), 불상조각을 중심으로 한 신라미술의 고찰, 중앙대학교
김이나(1988), 삼국시대 불상연구의 제문제, 미술사연구회
오소진(2011), 백제 불상의 미적 특성, 고려대학교
오혜경(1998), 고려시대 불상의 불두에 나타난 조형적 특징 연구, 조선대학교
전용환(1995), 고려시대 불상조각의 연구 : 석불상의 불두를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정영호 외 2명(2001), 고구려불상조각의 특성 연구, 고구려발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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