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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종교]고구려(고구려시대)의 불교, 백제(백제시대)의 불교, 신라(신라시대)의 불교, 통일신라(통일신라시대)의 불교, 고려(고려시대)의 불교, 당(당나라)의 불교 분석

저작시기 2013.03 |등록일 2013.03.29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Ⅰ. 고구려(고구려시대)의 불교

Ⅱ. 백제(백제시대)의 불교
1. 부여계와 고구려계의 통합
2. 불교 수용과 승가의 구성
3. 불교 수용기 사상적 내용

Ⅲ. 신라(신라시대)의 불교

Ⅳ. 통일신라(통일신라시대)의 불교

Ⅴ. 고려(고려시대)의 불교
1. 고려 초기 불교정책과 왕실기복불교
2. 귀족불교의 부패와 유교의 등장
3. 광종의 왕권강화정책과 불교
4. 왕실의 기복불교와 승려의 타락
5. 천태종의 개창과 시대적 흐름
6. 호국불교와 풍수도참사상
7. 서경 천도운동과 서북 민중의 봉기
8. 무신 정권 아래서의 불교
9. 지눌과 요세의 결사운동
10. 민중불교 항쟁과 귀족불교
11. 원 지배하의 불교와 사회
12. 고려의 미륵신앙운동

Ⅵ. 당(당나라)의 불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고구려(고구려시대)의 불교

고구려는 B. C. 37년 小水(渾江)를 중심으로 消奴部, 絶奴部, 順奴部, 灌奴部, 桂婁部 등 5部族(진단학회, 1981 : 226)이 세운 국가로 28왕 705년간 유지되었다.
太祖王(53~146?) 때에 桂婁部 高氏의 왕위 계승권이 확립된 이후 故國川王(179~196) 때에 이르러 왕권의 강화와 국가 체제의 중앙집권화는 더욱 진전되었다. 부족 국가, 성읍 국가, 연맹 국가의 단계를 거쳐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한 고구려가 국가 체제를 재정비하여 융성하게 된 때는 小獸林王(371~384) 시대로 372년에 불교를 수용하고 太學을 설립하였으며 373년에는 율령을 반포하였다. 불교가 국가의 정신적 통일에 이바지한 것이라면 太學은 새로운 관료 체계를 위하여 설립하여 국가의 틀을 다졌다. 廣開土大王(391~413)은 정복 사업을 통해 영토를 확대하고 연호를 永樂이라 하여 중국과 대등한 입장을 취하고 이어 長壽王(413~491)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겨(427), 정치?경제 등 가장 완비된 제도를 구축하였다(이기백, 1983 : 52~55).

<중 략>

당시 불교의 저명한 승려들 사이에서 이 종파들은 각각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도, 각 종파가 내면적으로 교리가 발전되었다는 요소가 있기도 하였지만, 그 종파의 실질적인 창시자와 황실과의 사이에 존재하였던 긴밀한 연관관계 때문이기도 하였다. 비록 天台宗,法相宗,華嚴宗 모두는 각각 고도의 복합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들 각각은 모두 명확하게 한정할 수 있는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기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정치상황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곧바로 이들 종파의 입장에 영향을 끼쳤다. 이 철학적인 종파들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실재성을 유지하고 그 종파가 발전하여 온 사회와 전혀 무관하였던 것처럼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한 면에서, 이 종파들은 “대중적인” 종파인 淨土宗이나 禪宗과 자주 대비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 교학적 종파들이 격리된 사찰에서 두문불출하던 승려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오한 불교용어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황실 후원자의 정치적 필요성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김복순(2005), 신라 불교의 연구현황과 과제,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김창식(1971), 고려불교에 대한 소고, 상주대학교
강문호(2009), 당 전기의 불교정책과 유·불·도 선후론, 동국대학교사학회
박광연(2010), 통일신라의 법화신앙과 불교 문화, 한국사연구회
오경후(2011), 고구려 불교 : 격의불교, 국가 불교적 성격, 선학원
조경철(2010), 백제 불교의 중국 영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사상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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