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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시기 2013.03 |등록일 2013.03.2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개요

Ⅱ. 여성교류와 세계여성대회

Ⅲ. 여성교류와 남북여성
1. 성사된 남북여성교류 현황
2. 성사되지 못한 남북여성교류 제의현황

Ⅳ. 여성교류와 한중여성

Ⅴ. 여성교류와 동서독여성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여성운동의 전성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까지였다.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페미니즘적 시각 또는 정체성이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이렇게 흩어져나간 페미니즘적 의식은 이제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 수많은 활동가 조직과 사회적, 문화적 프로젝트들이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목표와 접근법을 도입하고 있다. 노동자계급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들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다양한 풀뿌리 여성 단체들이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계급 및 유색인종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전국 지역여성 의회(National Congress of Neighborhood Women)’가 있고 이와 비슷한 관심을 가진 다른 지역 단체들도 여러 개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환경정의 투쟁에 앞장선 ‘동로스앤젤리스 어머니회(Mothers of East Los Angeles)’도 한 사례이다. ‘새로운 방향을 향한 여성행동(Women`s Actions for New Directions)’(예전의 ‘핵 비무장화를 위한 여성 행동’)은 건강 및 환경과 관련해 유색인종과 백인 여성 모두를 포괄한다. 다른 단체들도 많다.

<중 략>

1989년 동독의 변화 이전의 교류는 주로 서독 교회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동독을 지원하는 교류가 그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밖에 동서독의 여성관련 연구소들이 학술적인 자료와 경험을 교환하고 국제학술회의 등을 통하여 접촉을 가졌다. 인적교류에 있어서도 여성교류로 제한된 것은 아니지만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이후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동독여성의 경우 연금수령자인 60세 이상의 여자들과 65세 이상의 남자들이 서독과 서베를린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문화와 스포츠 분야에서도 동서독간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1989년 이전의 교류가 제한적이었던 것에 비해 1989년 동독이 변화 및 개방을 맞이하고서는 각 분야별로 집중적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이와 함께 여성교류도 여성단체, 직업단체, 연구단체, 노동조합 등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1989년 호네커가 퇴진하고 모드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동서독간 통일논의가 보다 진전되면서 여성교류도 활성화된다. 우선 서독의 독일여성원(DF)이 통일과정에서 연방의회, 연방정부, 연방상원에 대하여 자문자로서 로비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독일여성원은 다각도로 동독여성들과의 교류를 추진하고 통일준비 차원에서 상호이해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였다.

참고 자료

김원정(2002), 3·8 세계여성대회와 여성노동자운동의 과제, 사회진보연대
문장순(2009), 남북여성교류협력의 과제와 향후 방향, 한국평화연구학회
부산광역시여성센터(2007), 2007 여성국제교류 성과간담회, 부산광역시
여성부 교류협력과(2008), 여성단체현황 2008
함인희(2000), 남북한 여성교류·협력방안 소고, 국가안보전략연구소
황영주(2006), 지역여성국제교류 : 여성연대성의 실현, 한국세계지역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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