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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시기 2013.03 |등록일 2013.03.27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개요
Ⅱ. 논과 논농사
Ⅲ. 논과 논토양
Ⅳ. 논과 논가격
Ⅴ. 논과 농업노동요

본문내용

Ⅰ. 개요

한국의 초기 농경문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처음 ‘조’, ‘피’와 같은 잡곡을 주작물로 하여 출현한 우리 농업이 점차 ‘벼’, ‘콩’, ‘팥’, ‘수수’ 등으로 다양성을 추구했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주작물인 ‘벼’가 등장한 것은 그 동안 발굴된 벼의 유물들로 보아 대략 기원전 2천년을 전후한 시기의 일로 판단된다.
먼저 여주 흔암리에서 출토된 탄화미를 위시하여, 부여 송국리와 충주 조동리, 단양 수양개, 광주 신창동 유적 등지에서도 재배하였음이 확실한 고대 벼가 출토되었다. 그러다가 일산 신도시 건설을 앞두고 실시된 가와지 유적 4000~5000여 년 전의 토탄층에서 볍씨가 발굴됨으로써 한국벼의 기원은 훨씬 소급되었다. 역시 김포 가현리 일대의 4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 토탄층에서도 볍씨가 발견되었다. 또한 청원 소로리 구석기유적에 대하여 방사성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1만 3000~1만 4800여 년 전에 형성된 유기질 점토층에서는 고대 벼가, 1만 7300여 년 전 토탄층에서는 유사벼가 각각 발견되었다. 이 소로리 볍씨는 DNA 분석 결과 현재의 벼와 유전적 유사성은 비록 39.6%에 불과하였지만, 지금껏 세계 학계에 보고 된 사례 중 가장 오래된 벼 중의 하나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대부분의 초기 벼들은 다른 작물들과 함께 재배된 것이었는데, 기원전 1,300년경인 평양 남경유적에서 발견된 여러 종류의 탄화곡물들은 그런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최근 이에 따라 우리 벼농사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는 주로 기원전 10세기 이전의 유적에서 나온 고대 볍씨들이 과연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에 대한 판단 여부를 둘러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더 많은 연구 축적이 필요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신석기시대에 이미 벼농사가 개시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왜냐하면 이미 9000여 년 전부터 벼농사가 시작되었던 중국의 경우, 특히 양자강 유역의 하모도(河姆渡)유적에서 기원전 5000여년 경에 이미 단립형 벼가 재배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초기 도작문화의 흔적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참고 자료

김명숙 외 17명, 논토양의 화학성과 질의 장기 변동, 한국토양비료학회, 2010
박상원 외 7명, 우리나라 논 토양 중 수은함량과 벼 흡수이행,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2008
서동균, 논농사 국토·환경 보전기능의 사회경제적 평가, 농촌진흥청, 2001
이동훈, 농업노동요의 담화체계 연구, 동아대학교, 2001
이우연, 19세기 농업생산성의 하락과 임야 소유권, 한국의 장기경제통계, 2003
차명수 외 1명, 우리 나라의 논가격 및 생산성, 1700년-2000년, 경제사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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