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러일전쟁과 한국병합

저작시기 2011.11 |등록일 2013.03.23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서론 - 러일전쟁을 다루게 된 동기

Ⅱ. 본론
(1) 러일전쟁의 배경과 전황
(2) 포츠머스 강화 조약과 한국
(3) 한국의 상황

Ⅲ. 결론

본문내용

1904년에서 1910년은 한국의 가장 치욕스러운 시기로, 그중에서도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은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벌인 전쟁으로 우리나라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쟁이다. 그때 당시 한국은 러시아와 일본의 동향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1904년 1월 21일에 중립국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러시아와 국교를 단절한뒤 정로군을 동원하여 전쟁을 일으키면서 미리 별도로 편성해 둔 한국임시 파견대 5개 대대를 한반도에 주둔시켜 무력점거하였다. 이때부터 실질적인 일제강점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한국은 일본에게 영토사용권, 외교권, 내정권, 군사권 등을 차례로 빼앗기고 결국 병합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중 략>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합병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에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 폐하는 내각 총리 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統監)인 자작(子爵) 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각각 그 전권 위원(全權委員)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위의 전권 위원들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아래에 적은 모든 조항들을 협정하게 한다

<중 략>

러일전쟁과 한국병합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힘이 없으면 당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구열강과 일본에 의해 한국의 명운이 좌지우지 되었다. 예전에는 러일전쟁에 대해 단순히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전쟁이 한반도를 먹기 위한 전쟁이었으며 그 안에 많은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을 알고는 참담함을 느껴야했다. 한국은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열강들이 한국을 먹기 위해 싸우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만약 한국이 힘이 있었다면 그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 자료

유용태 박진우 박태균,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창비, 2010
최문형, 『국제관계로 본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병합』, 지식산업사, 2004
로스뚜노프 외 전사연구소, 『러일전쟁사』,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4
이태진, 『한국병합, 성립하지 않았다』, 태학사, 2001
미야지마 하로시 외 15명, 『일본, 한국병합을 말하다』, 열린책들, 2011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백과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