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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문왕의 정치체제정비 [레포트].hwp

저작시기 2012.05 |등록일 2013.03.19 한글파일한글 (hwp) | 22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I. 머리말

II. 본문
1. 문왕의 즉위와 대당관계
2. 중앙체제정비와 전제왕권의 강화
3. 문왕대의 천도
4. 지방 제도 정비
5. 유학과 불교의 발전
6. 문왕의 대외정치

III. 맺음말

본문내용

I. 머리말
발해 문왕 大欽茂는 발해 전성기의 초석을 닦은 왕이다. 여기에서는 발해 제 3대 왕인 문왕이 즉위한 당시 시대적 배경을 당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할 것이다. 또 高王·武王의 영토 확장 정책에 이은 문왕의 영토 확장 모습과 그의 선대들과 비교되는 문왕 특유의 문치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서 문왕대에 해동성국이라는 발해 전성기의 틀이 다져져간 모습들을 추적하고자 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선대들의 영토 확장의 결과물인 넓은 영토를 천도, 지방행정구역 편제 등을 통해 정비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시 달라진 발해의 위상과 함께 변하게 된 신라, 일본과의 관계도 간단히 소개하겠다

<중 략>

『신당서』「발해전」에 “천보말년(755년)에 상경으로 이사하였다. 이곳은 구국에서 300리로 홀한하의 동쪽이었다. ……정원떄(785~804년)에는 동남쪽인 동경으로 천도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가담이 쓴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에는 “현주는 천보년간 왕이 도읍했던 곳이다 정북으로 600리를 가면 발해왕성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신당서』에는 상경, 동경으로 천도하였다고 서술하였으나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에는 “현주는 천보년간 왕이 도읍했던 곳이다. 정북으로 600리를 가면 발해왕성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신당서』에는 상경, 동경으로 천도하였다고 서술하였으나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에는 도읍, 왕성 등으로 서술하여 서로 모순되는 것같이 반영되었다.

<중 략>

발해가 직접 남긴 역사서가 없어, 다른 주변국들이 남긴 그들의 시각이 많이 들어간 자료만을 가지고 연구자들이 연구하다 보니 한계점이 많고 추측이 난무한 것처럼 느껴져 안타까웠다. 그러나 얼마전 중국측의 발굴조사로 인해 나온 고고자료들로 인해 다시금 발해연구에 활기가 띠는 느낌을 받았다. 이 고고조사도 물론 중국에 의해 시행된 것이지만, 몇백년 전 중국에 의해 쓰여진 기록들보다는 눈으로 직접 보고 인증(?)되는 조사이기 때문에 그 것들 보다는 훨씬 더 좋은 자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발해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에 나도 답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발해라는 나라가 지금 우리나라와 영토적으로 전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크게 발해사라는 것이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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