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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동아시아 외교관계를 통해 살펴본 신라의 삼국통일

저작시기 2012.08 |등록일 2013.03.18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Ⅱ-1. 수제국의 등장과 고구려의 도전
Ⅱ-2. 당태종(唐太宗)과 연개소문(淵蓋蘇文)의 대결
Ⅱ-3. 7세기 신라의 대외관계.
Ⅱ-4. 신라 동맹외교의 승리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기원후 600년의 시기는 어떠 했을까? 당시의 시기는 우리의 역사 뿐아니라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시기라고 할수 있다.
기원경에는 각기 성립되어 발전하던 삼국은 4~6세기를 지나면서 두드러진 중앙집권체제로의 발전을 보인다. 이러한 중앙집권체제아래에서 사적인 세력기반이 축소된 지배층은 중앙귀족으로 편제되고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새로이 부를 축척한 세력이 성장하면서 중앙귀족의 수도 증가하였다.
이과정에서 삼국의 지배세력은 빈번하게 대외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이에 따라 7세게 들어서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사이의 전쟁이 더욱 치열해지게 된다.
삼국간의 전쟁은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동아시아 차원의 전쟁으로 확대된다.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후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에 대한 공세를 가하기 시작하였고, 고립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압력에 대응하여 수?당과의 외교관계에 힘을 기울이게 된다. 당시 수?당은 중국을 통일하고 돌궐과 고구려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구려를 침략하였는데 고구려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 하였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라와 당은 서로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대로 멸망시킨다.

<중 략>

백제멸망의 위기가 한창 고조되었을 때 고구려가 이를 방관하여 마침내 망국의 화근을 초래한 것만 보더라도 백제와 고구려가 끝내 군사동맹에까지 이르지 못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백제와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일본이 백제가 멸망된 뒤 그 부흥운동군을 돕기 위해 출병했다가 664년 8월 백강구(白江口)의 해상전투에서 2만 7천명의 대군이 나·당 연합군에 참패하고 말았다. 나·당 연합군은 전승의 여세를 몰아 부흥운동군의 거점을 총공격하여 이를 함락시켰다.
무열왕은 661년 생을 마감하고, 태자인던 문무왕(文武王)이 왕위에 올라 삼국통일의 대업을 물려받았다. 문무왕은 즉위하자마자 군대를 동원하여 당과 함께 고구려 정복에 나섰다. 이윽고 연개소문이 665년 죽고, 그 세 아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져 고구려는 분열한다. 결국 고구려는 당의 침략군에 가세한 신라군에 의해서 평양성이 함락되어 668년 9월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참고 자료

김기협 “밖에서본 한국사”,
노태돈 “삼국통일전쟁사” 서울대학교 출판부
서영교 “나당전쟁사” 아세아문화사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역사” 역사 비평사
김기협, 『밖에서 본 한국史』,돌베개,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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