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러일전쟁 이후(헤이그 평화회의) 영국의 세계정책

저작시기 2013.03 |등록일 2013.03.17 | 최종수정일 2016.07.20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200원

소개글

러일전쟁 이후(헤이그 평화회의) 영국의 세계정책 [영국 유럽정책, 모로코 위기, 영불협상, 영러 앙탕트 체결, 헤이그 평화회의 영국 군비감축안 의도, 제1,2차 헤이그 평화회의]에 관한 자료 입니다.

참고하셔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

목차

1. 서론

2. 일련의 사건들로 살펴 본 영국의 동아시아 정책(거문도 점령~영일동맹까지)

3. 제1차 영일동맹(1902)과 제2차 영일동맹(1905)의 차이

4. 1904-1907년 영국의 유럽정책
① 영불협상(1904.4.8)
② 모로코 위기(Moroccan crises, 1905-1906)
③ 영러간의 앙탕트 체결(1907.8.31)

5. 헤이그 평화회의
① 제1,2차 헤이그 평화회의
② 1907년 황성신문(6월-8월)을 통해 본 영국과 평화회의
㉠ 1907년 6월
㉡ 1907년 7월
㉢ 1907년 8월
③ 영국의 군비감축안의 의도

6.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1907)는 열강의 군비경쟁으로 인해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개최되었다. 무장평화의 불안정성이라는 문제가 인식되고 있었음에도 열강이 스스로 군비를 축소할 의지가 없었으므로, 결과적으로 군비감축 의도는 실패하고 전투에 있어서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에만 합의하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영국은 1904년 영?불협상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자신의 파트너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모로코 위기(1905)가 발생하였다. 이 모로코 위기로 독일은 유럽 내에서 고립되었다. 모로코 위기 후 영국은 동아시아에서의 대립국이었던 러시아와 협상을 맺게 되었다. 영?러협상으로 영일동맹은 그 의미가 퇴색된다.
3국협상(영,프,러) 세력은 군비감축안을 가지고 독일을 압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독일은 이에 반발하였고 이러한 대립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나타났다.

<중 략>

다음으로는 제1차 영?일동맹과 제2차 영?일동맹의 차이점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목적의 차이였다. 제1차 동맹에서는 일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제2차 동맹에서는 러시아에게 맞추어졌다. 둘째, 방어동맹에서 공수동맹으로의 전환이다. 셋째, 대한제국의 언급 여부이다. 제1차 동맹에서는 대한제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제2차 동맹에서는 대한제국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고 대한제국을 일본에게 맡기는 동시에 인도에서의 방어의무를 지워준 것이다.
다음으로는 1904-1907년 영국의 유럽정책을 살펴보았다. 영국과 프랑스의 협상(1904.4.8) 이후 모로코 위기가 발발하자, 독일은 유럽 내에서 고립되었다. 영국은 동아시아에서의 대립국이었던 러시아와 1907년 협상을 맺는다. 이는 모로코 위기 후 프랑스 동맹국인 러시아와 자연스럽게 협상을 맺을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