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박정희 정권과 한국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고찰

저작시기 2012.07 |등록일 2013.03.09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제 1강 “옳은 일 하기”를 보면, 그 시작에 허리케인 찰리에 관한 이야기 나온다. 2004년 여름 멕시코 만에서 발생한 강력한 허리케인인 찰리는 플로리다를 휩쓸어 11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입히고 2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허리케인이 지나간 땅에서는 가격폭리 논쟁이 불붙는다.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에 의해서 귀해진 각종 생필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바가지요금이 판을 친 것이다. 이에 대해 가격폭리는 부족한 생필품과 서비스의 공급을 상승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부족한 생필품과 서비스의 공급을 빠르게 회복시킨다는 논리와 불쌍한 이들에게서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논리가 부딪히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는 여기서 다루려는 문제는 아니다.
정의라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리고 최소한 역사에 있어서만큼은 정의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 전쟁이 만약 자유진영의 승리로 끝맺었다면, 베트남전쟁의 정의는 어떻게 되었을지는 우리가 그 세상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베트남 호치민에 위치한 묘소에 방문하여 참배와 함께 양국의 불행한 과거에 대해 사과하였다. 이어 2001년 베트남 국가주석이 방한했을 때에는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다. 이 두 가지로 보건데 최소한 우리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군의 참전이 정의롭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살육에 진정한 정의가 존재하기는 어려우며 따라서 전쟁에 있어서 정의는 곧 명분의 쟁취라 생각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승리의 쟁취가 곧 명분의 쟁취로 이어지는 아이러니를 목격하곤 한다. 그러나 명분은 허구일 뿐 실제로 그 뒤에는 다른 무엇인가가 항상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일부 정치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알고 있는 명제가 아닐까 한다.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