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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탕평

저작시기 2012.04 |등록일 2013.02.28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700원

소개글

정조의 탕평정치에 관해 작성한 리포트입니다. 각주 및 참고문헌은 양식에 맞추었습니다.

목차

1.들어가며
2.제 1장. 신하 중심의 정치적 불균형
3.제 2장. 한 사람에 의한 탕평정치
4.제 3장. 왕 중심의 새로운 불균형
5.나가며

본문내용

이 글에서는 정조의 시대를 중심으로 그의 탕평정치가 가지고 있던 모순점을 살펴보려 한다. 구체적으로는 정조의 시대가 역사적으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왕권과 신권의 불균형이라는 정치상황 속에서 정조가 취했던 정치적 행보가 조선의 정치에 어떤 긍정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가 보여주는 모순점은 무엇인지를 고찰한다. 이를 위해 먼저 당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신하의 권세가 강해지고 왕의 입지가 좁았던 당시의 정치적 불균형을 고찰한다. 그리고 정조가 자신을 중심으로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였는지를 살펴보고 왕권의 강화로 인해 신권에서 왕권으로 권력이 옮겨가 새로운 불균형이 발생하는 모습을 밝혀낸다. 마지막으로 논의를 간단히 요약하고 정조의 탕평정치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며 글을 마친다.

< 중 략 >

정조 개인은 위대한 학문군주였으며 정치가였지만 지나치게 개인에 의존한 탕평정치는 권력 구조가 한 곳으로 몰리는 현상을 가져왔다. 집중된 정치구조에서 정조는 자신의 역량으로 정치를 이끌어 나갔으나 그 뒤의 군주들은 그러지 못했다. 결국 정조 사후 조선의 정치는 세도정치로 흘러가게 되었으며 폐쇄성이 강화되어 19세기 서구의 충격에 국가가 크게 흔들리게 된다. 단기적으로 정조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한 탕평정치는 조선의 정치를 개혁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장기적으로 그로 인해 형성된 정치구조는 조선 정치의 쇠락을 불러왔다. 이런 상황에 대해 혹자는 ‘정조 사후 보수와 폐쇄로 전환한 세도정치는, 역사의 반동이자 후퇴였으며 사실상 조선의 멸망이었다’12)고 평한다. 정조가 세상을 떠날 즈음 잘 자라던 벼 포기가 하얗게 죽어 ‘상복을 입는 벼’가 나타난 것13)은, 정조의 죽음뿐만 아니라 조선의 죽음을 슬퍼해서가 아니었을까.

참고 자료

『書經』(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http://ctext.org/zh 참조)
이덕일, 『조선왕 독살사건』, 다산초당, 2005.
박현모, 「정조의 탕평정치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제34집 제1호, 한국정치학회, 2000.
김태희, 「정조의 문체정책의 양면성」, 『동양정치사상사』 제11권 제1호,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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