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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송정산(원불교)의 교정확립기, 송정산(원불교)의 수심정경, 송정산(원불교)의 건국론, 송정산(원불교)의 정치론, 송정산(원불교)의 삼동윤리, 송정산(원불교)의 중도정치

저작시기 2013.02 |등록일 2013.02.26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개요

Ⅱ. 송정산(원불교)의 교정확립기

Ⅲ. 송정산(원불교)의 수심정경

Ⅳ. 송정산(원불교)의 건국론

Ⅴ. 송정산(원불교)의 정치론

Ⅵ. 송정산(원불교)의 삼동윤리
1. 삼동윤리
1) 동원도리
2) 동기연계
3) 동척사업
2. 삼동윤리를 통해 미래 세계가 지향해야할 세계 공동체의식에 선각적 역할을 제시
1) 사회평등의 윤리
2) 민중의 삶
3) 생명가치를 존중
4) 삼동윤리 중에서 특히 동척사업의 이념은 시급히 수행

Ⅶ. 송정산(원불교)의 중도정치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정산의 본명은 송도군(宋道君), 법명은 규(奎), 법호는 정산(鼎山)이다. 그는 야성 송씨(冶城 宋氏)의 시조 송맹영(宋孟英 : 고려 목종 AD 997-1009년)의 30대손으로, 부친 송벽조(宋碧照)와 모친 연안 이씨 이말례(李未禮)의 장남으로 경북 성주에서 출생했다. 정산의 집안은 대대로 내려오는 유가적 가풍을 지녔다.
시조 송맹영이 야성 송씨의 시조로 받들어 지게 된 것은 고려조의 목종 때 간의대부(諫議大夫)와 총부의랑(總部議郞)을 역임하고 야성(冶城 :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구정동 일대)을 식읍으로 받아 정착하면서부터였다. 그 뒤 14대 중시조 직장공파(直長公派) 송소(宋紹)의 손자 송희규(宋希奎)대에 송씨 일부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정에 이사하여 정산의 대에까지 이어왔다.
정산의 조부 송성흠(宋性欽)과 부친 송벽조(宋碧照)는 유학자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한문과 儒家교육을 받았고, 정산 자신은 7세 때부터 조부에게서 漢文을 배웠다. 14세 때 당시 嶺南유학의 거두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에게 유학을 배운 바 있으며 16세에 그의 스승과 中庸에 관해 문답을 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학으로 그의 정신적, 지적 갈증을 해갈할 길이 없어 집을 떠나 방황했다. 13세에 성주군 금수면 광원리에 있는 呂씨집안의 呂淸雲(1896~1978)과 결혼했으나 생활인으로서 평범한 삶보다는 名山과 賢者를 찾아 경상도의 가야산, 상주의 백화산, 전라도의 모악산, 부안 변산의 월명암 등지를 찾아다니면서 구도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방랑역정에서 그는 신흥교인 증산교, 불교 등과 접했으며 또한 독거(獨居)하면서 깊은 사색과 기도의 시간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가 1918년 봄 전북 정읍 북면 화해리 김해운(金海運)의 집에서 혼자 道를 닦고 있을 때 그의 평생의 정신적 지주요 동반자였던 원불교 창시자 少太山 朴重彬의 방문을 받아 형제지의를 맺고 또 동년 8월 2일에 전남 영광군 길룡리에 있는 소태산을 찾아 師弟之誼를 맺었다. 동년 9월 4일 宋道君이라는 옛 이름(호적상의 이름)을 버리고 소태산으로부터 교단 수위단원의 중앙을 상징하는 「奎」라는 새 이름을 받고 「鼎山」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참고 자료

김삼룡(1992), 정산종사의 생애와 사상,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김호병(1985), 정산의 건국론 연구, 원광보건대학
김도공(2008), 원불교 영성세계의 특징과 의미, 한국신종교학회
김영두(2000), 세계화와 송정산의 삼동윤리, 범한철학회
김귀성(2011), 정산의 교육철학, 원광보건대학교 원광문화연구원
박혜훈(2000), 정산종사의 정토관,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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