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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시기 2013.02 |등록일 2013.02.22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고전시가 공무도하가 작품분석

Ⅱ. 고전시가 구지가 작품분석
1. 거북과 머리의 상징적 의미
2. <구지가>의 주술성
3. <구지가>에 대한 견해
1) 의식요
2) 노동요
4. <구지가>의 상징적 의미

Ⅲ. 고전시가 정과정 작품분석

Ⅳ. 고전시가 황조가 작품분석

Ⅴ. 고전시가 어부사시사 작품분석

Ⅵ. 고전시가 찬기파랑가 작품분석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국 시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산출된 작품으로 창작연대 미상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2세기 후반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채옹의 《금조(琴操)》와 3세기 말 최표가 편찬한 《고금주(古今注)》에 실렸으며, 공후란 악기에 의해 연주되던 곡이다. 이 작품이 고조선 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중국의 기록에 의한 것이기에 고조선의 작품으로 확증하기는 어려워 국문학 작품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특히 <공무도하가>는 워낙 오래된데다가 그 전승의 경로조차 특이하여 역사적 복원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주장이 많다. 작품의 국적 문제, 창작 시기 문제, 작자 문제 등등 그 문제가 많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공무도하가>의 전승 문헌이 중국 중심으로, 문학적 형식이 중국의 악부시 형태로 전해 온 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그들의 악부시 전통 속에서 지속적으로 전승되어 왔지만, 우리는 17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우리 노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무도하가>에 나오는 ‘조선진’이란 지역을 우리나라로 추정한다면 <공무도하가>는 고조선이나 위만조선, 혹은 한사군 때 형성된 노래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때는 아직 공후라는 악기가 유입되지 않았다. 공후가 유입된 시기는 삼국시대 후기 무렵으로 다소 무리가 있다. 그리고 자료에 등장하는 곽리자고, 여옥, 여용과 같은 전형적인 중국식 이름의 명명법도 걸림돌이 된다. 고조선이나 위만조선, 혹은 한사군 때라면 우리에게는 아직 중국식 이름이 일반화되지 않았을 시기이므로, 이들 역시 우리나라 일반 평민의 이름으로는 개연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우리 노래로 주장할 유일한 단서라 할 ‘조선진’의 ‘조선’까지도 중국에 같은 이름의 지명이 존재함이 밝혀졌다. 중국에도 직례성의 영평부 근처에 ‘조선현’이 실제로 존재했음이 문헌기록을 통해 입증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중국 노래로서의 가능성이 더 높게 보이는 것은 관련 자료나 사료(史料)에 대한 비판적 해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수용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럼 <공무도하가>가 우리의 것이라는 타당한 증거를 찾아야한다. 우선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실존했던 중국의 조선현은 <공무도하가>발생의 지리적 배경과 무관한 지명이다. 중국에도 조선현이 있었던 것은 《위서(魏書)》 같은 역사서나 지리서를 통해 입증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이 조선현은 서기 432년 북위(北魏)의 태무제가 북연(北燕)을 정벌하면서, 당시 고구려에

참고 자료

김석회(2011), 어부사시사의 흥과 서정적 특질, 한국어교육학회
박인희(2010), 황조가의 배경 연구, 한국고시가문학회
신영명(2008), 찬기파랑가의 상징체계와 경덕왕대 정치사, 국제어문학회
이수곤(2006), 정과정의 창작 성격에 대한시론적 고찰,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조용호(2010), 풍요기원 노래로서의 구지가 연구, 서강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하경숙(2011), 공무도하가의 현대적 변용 양상, 동양고전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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