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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15C) 문학,협주, 16세기(16C) 문학, 17세기(17C) 문학, 18세기(18C) 문학, 19세기(19C) 문학, 20세기(20C) 문학, 21세기(21C) 문학

저작시기 2013.02 |등록일 2013.02.22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Ⅰ. 15세기(15C)의 문학
Ⅱ. 15세기(15C)의 문학과 협주
Ⅲ. 16세기(16C)의 문학
Ⅳ. 16세기(16C)의 문학과 사대부가사
Ⅴ. 17세기(17C)의 문학과 프랑스문학
Ⅵ. 18세기(18C)의 문학과 영국문학
Ⅶ. 19세기(19C)의 문학과 낭만주의
Ⅷ. 19세기(19C)의 문학과 사실주의
Ⅸ. 19세기(19C)의 문학과 상징주의
Ⅹ. 20세기(20C)의 문학
Ⅺ. 21세기(21C)의 문학과 구비문학

본문내용

Ⅰ. 15세기(15C)의 문학

선초, 유교이념을 실현할 문물을 정비하고 대외관계를 원만히 해결해나갈 인재 양성이 절실한 시점에서 集賢殿, 弘文館 등은 문인학자들을 양성해내는 중요한 기관이었다. 서거정(<태평>), 강희맹(<촌담해이>)은 집현전 출신의 문인이었고, 이륙(<청파극담>), 성현(<용재총화>)은 집현전의 후신인 兼藝文을 거쳤다. 당시 토지 제도, 호구 정리, 군제 개편, 변방 개척 등의 실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雜學이 중시되었는데, 세조는 강력한 전제 왕권을 바탕으로 잡학 중시 정책을 펴면서 儒者들에게 천문, 지리, 의약, 복서에 이르기까지 두루 꿰뚫는 ‘通儒’의 자세를 요구했다. 세조대부터 등장하는 훈구계 문인들에 의한 패설류 저술(<태평광기상절>)은 잡학의 가치를 긍정하는 학문적 분위기에서 나올 수 있었다.
서거정은 <太平廣記詳節序>에서 ‘通儒’의 자세를 이상적으로 보고, 이를 위해서는 옛사람의 말과 행동을 많이 알아서 박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氣의 운용을 자유로이 하기 위해서 성현의 경전이 아닌 ‘긴장을 풀어주는(弛張)’ 책 역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凡人의 사소한 말과 행동을 놓치지 않고 개인의 기상을 펼칠 자양으로 인정하는 자세는, 이상적 전범으로서의 문학이 아닌 일상을 토대로 하는 다양하고 개성적인 문학을 긍정하여, 문헌 소화 같은 이완의 극단에 선 문학을 창작하는 배경이 되었다.
성종조에는 경국대전을 완성하는 등 제도와 문물이 완비되어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안정되기에 이렀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 일선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나 견문 등을 자료로 하여 필기류 저작이 성행했다. 실천적 유학이 발달되면서 억제되었던 감정이 현학적 문학으로 표출되었으며, 홍문관을 중심으로 사대부 간의 교우관계가 확대되면서 서로간의 관심사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진 점 또한 이 시기에 이러한 저술이 집약적으로 나타나게 된 動因으로 제기된 바 있다.

참고 자료

신은영(2009), 프랑스 17세기 문학 속에서의 예절에 관한 연구, 한국프랑스학회
임형택(1995), 19세기 문학예술의 성격, 그 인식상의 문제점, 수원대학교국어국문학회
조혜란(1999), 조선조 15세기 서사문학의 구도와 특징, 한국고전연구학회
조수웅(2005), 20세기 문학과 문화연구, 한국예총
최주리(2000), 18세기 영국의 문학과 도시, 영미문학연구회
허왕욱(2004), 16세기 가사문학에 나타난 여성 표현의 양상, 한국교원대학교한국어문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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