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18세기(18C) 극장,화학, 18세기(18C) 붕당정치,애국주의, 18세기(18C) 민족주의,식사예절, 18세기(18C) 모더니즘, 18세기(18C) 현대발레,18세기 감상희극

저작시기 2013.02 |등록일 2013.02.21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Ⅰ. 18세기(18C)의 극장

Ⅱ. 18세기(18C)의 화학
1. 연금술의 종말
2. 화학적 원리의 탐구
3. 연소설
4. 산소설의 원리
5. 헬스와 기체의 취급
6. 조셉 프리스틀리와 산소의 발견
7. 돌턴 : 원자론
8. 아보가드로의 법칙

Ⅲ. 18세기(18C)의 붕당정치

Ⅳ. 18세기(18C)의 애국주의

Ⅴ. 18세기(18C)의 민족주의

Ⅵ. 18세기(18C)의 식사예절

Ⅶ. 18세기(18C)의 모더니즘

Ⅷ. 18세기(18C)의 현대발레

Ⅸ. 18세기(18C)의 감상희극

본문내용

Ⅰ. 18세기(18C)의 극장
18세기에는 독일이나 러시아, 스웨덴 등지의 유럽 전역에서 극장 건물이 급증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 지역의 극장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확립된 건축 전통에 따라 지어졌다. 이 시기의 가장 유명한 극장 건물로는 아직까지도 건재하고 있는 스웨덴의 드로팅홀름(Dottningholm)이 꼽힌다. 이 극장은 왕실의 여름 별장용으로 스톡홀름 외곽에 지어진 것으로 1766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1790년대에는 드로팅홀름 극장 외부에 판자를 세워 20세기 초까지 폐쇄시켰다. 오늘날에 와서는 관광객들이 스톡홀름에서 페리호를 타고 그 극장 있는 자리까지 가서 18세기의 이탈리아식 프로시니엄 아치와 기둥과 수레 방식의 시스템 등 완벽한 작업 체계를 볼 수 있다. 심지어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윙과 셔터는 원근법에 따라 그려진 배경 그림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전 유럽의 극장들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지만 18세기에 프로시니엄 아치 극장이 되면서 몇 가지 중요한 변형을 도모하게 되었다. 우선 극장은 새로운 중산층 관객의 수용을 위해 규모 면에서 획장 되었는데 점점 커져 가는 도시나 마을에서 세력을 넓혀 가는 상인 계층이 중산층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었다. 일례로 런던의 드루리 레인에서는 1700년에 650석에 불과하던 관객석이 1800년에는 3,000석으로 늘어났다. 또한 실내는 달걀 모양의 타원형으로 구성되어 관람 여건이 향상되었다. 그리고 18세기 말에는 심지어 프랑스에서조차도 피트 석이 등받이 없는 의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18세기 중반까지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무대 위로 올라와서 관람하던 관객들이 모두 무대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는 드니 디드로가 확립한 제 4의 벽이라는 개념의 극적 관습을 유지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이로써 관객들은 연기를 방해하지 않게 되고 배우들 또한 관객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관객들과 배우 사이에 가로 놓여 그 둘을 분리해 주고 있는 것과 같았다. 제 4의 벽이라는 관습은 19세기가 될 때까지 연극적 관행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지만 관객들이 무대 밖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행에 한 발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박창균, 수학에서 '모더니즘'의 전개와 이에 대한 성찰 : 18세기를 중심으로, 한국수학사학회, 2004
오경화 외 1명, 18세기 영국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홍익대학교, 2010
이주희, 현대발레 작품성향을 통한 창작발레 대중화 방안연구, 한양대학교, 2009
조승래, 애국주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 청주대학교교육문제연구소, 1998
조정미, 18세기 기체화학의 형성과 화학혁명, 성신여자대학교, 1993
최완기, 18세기 붕당의 정치적 역학관계, 청계사학회, 1986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