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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골품제도와 인도의 카스트 제도 비교

저작시기 2012.03 |등록일 2013.02.13 | 최종수정일 2018.02.23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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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신라의 신분제도는 골품, 즉 혈통의 높고 낮음에 따라 관직진출·혼인·복색(服色)을 비롯한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범위와 한계를 규정한 신분제였다. 특히 세습성이 강하고 신분간의 배타성이 심하여, 일찍부터 인도의 카스트 제도 및 일본의 씨성(氏姓) 제도와 비교되어 주목받아왔다. 여기에는 같은 삼국시대에 존재한 고구려·백제의 신분제 및 이후 고려·조선시대의 신분제와 비교해서 신라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신라 국가형성기 이래 정치체제 및 사회발전과정과 병행하여 정비된 골품제는 신라에 의해 삼국이 통일된 이후에도 장기간 존속하다가 고려의 성립으로 소멸하였다.
골품제는 단순히 법제상의 장치일 뿐만 아니라 신라사회의 성격을 대변하고 사회조직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따라서 그 형성과정은 곧 신라사회의 형성과정과 맥락이 같다. 골품제는 왕족을 대상으로 한 골제(骨制)와 여타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두품제(頭品制)로 구분된다. 신라의 박(朴)·석(昔)·김(金) 3성씨 집단은 경주에 정착하여 사로국(斯盧國)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이들 성씨 집단은 상호간에 혼인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배타적인 신분적 특권을 누렸다. 이들에 의해 형성된 혼인집단을 골족(骨族)이라 하고, 이에 따라 지배신분층을 중심으로 편성된 신분질서가 골제이다. 이같은 골족들의 신분적 우월감은 관념에 그치지 않고, 형질적으로도 피지배민과 달랐다고까지 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합리화시켰다. 특히 내물왕(奈勿王) 이후 김씨 집단의 왕위세습이 확립됨에 따라 김씨 중심의 왕골(王骨)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골제가 성립되어가는 한편 신라는 주변의 음즙벌국(音汁伐國)·실직국(悉直國)·압독국(押督國)·소 문국(召文國)·감문국(甘文國)·골벌국(骨伐國) 등 여러 소국들을 복속시켜나갔다. 이들은 신라에 정복된 뒤 신라로부터 직·간접적인 지배를 받거나, 원래 거주지로부터 집단적으로 이주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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