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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돈 - 민족주의 사학자와 문화사학자 사이의 갈림길

저작시기 2010.01 |등록일 2013.02.07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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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민족주의사학
3. 문화사학과 문화사관
4. 황의돈과 민족주의, 그리고 문화사관
5. 맺음말

본문내용

한국근대 ․ 현대의 한국사 연구는 한국 근대사, 현대사의 특수한 성격에 의해 제약을 많이 받았다. 한국의 근대사학이 태동한 일제강점기는 일제의 국권침탈로 민족의 운명이 위기에 처했고, 일제 통감부의 사상과 학문에 대한 간섭, 일제에 의한 한국사의 왜곡이 자행되는 상황에서-당시 국사(國史)는 일본사였고 조선사는 일본사의 한 부분으로 가르쳤다-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민족적 자아를 확립하는 것은 민족적 과제였다.
일제시기 한국인에 의한 한국사 연구는 대체로 민족사학 ․ 실증사학 ․ 사회경제사학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민족사학은 식민사학에 대한 대응점으로 그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민족사학은 대체로 망명지에서 발전하였는데, 황의돈, 신채호, 박은식, 이상룡, 김교헌, 장도빈 등이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민족주의사학을 일으켰다. 이들 중 일부는 후에 국내에 들어와 민족사학의 보급에 주력하였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황의돈이었다.

< 중 략 >

4. 황의돈과 민족주의, 그리고 문화사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족주의사관과 문화사관은 문화사관이 하위개념, 혹은 관점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황의돈이 민족주의사학자이면서 문화사관을 가진 사학자로 평가되는 것은, 황의돈의 저서『신편조선역사』에서 문화적 특징에 따라 시대를 상고 중고 근고 근세로 구분하는 등 문화사학적인 학문체계를 갖추었다는 점 이도상,『일제의 역사침략 120년』, 경인문화사, 2003, p244.
과 황의돈이 통사에서 각 시대사 말미에 ‘문화’면을 설정하여 특히 강조한 점 때문이다.
또한 그는 신채호나 박은식의 유심사관과는 그 접근 방식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역사 속에서 민족의 정신적 유산을 찾아내는데 몰두하면서도 역사를 단편적인 양상이 아닌 종합적인 총제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다시 말하면 일원론적인 혼이나 정신을 부각시켜 민족정기를 살려보려는 유심사관과는 달리 역사 속에서 다원론적인 문화양상(제도, 종교, 학문, 산업, 풍속 등)의 발견을 통하여 민족정기를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조동걸,『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 비평사. 1994, p135~136.

참고 자료

조동걸,『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하, 창작과 비평사. 1994.
이도상,『일제의 역사침략 120년』, 경인문화사, 2003.
이만열,『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푸른역사, 2007.
성균관 대학교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교육&#8228;연구단 편,『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장벽을 넘어 -갈등의시대로부터 화해의 시대로』, 성균관대 출판부, 2005.
김기승,「식민지시대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역사인식」,『내일을 여는 역사』제25호, 2006.
이영화,「최남선의 문화사관과 역사연구 방법론」,『한국 근대사 연구』, 2003.
최영표,「부르크하르트의 시민사회 비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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