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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과 봉정사 극락전의 건축 양식

저작시기 2010.01 |등록일 2013.02.07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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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부석사 무량수전의 역사
2. 부석사의 가람배치
3. 부석사 무량수전의 건축양식
4. 봉정사 극락전의 역사
5. 봉정사의 가람배치
6. 봉정사 극락전의 건축양식

본문내용

1. 부석사 무량수전의 역사
부석사(浮石寺)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의 영주 봉황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676년(문무왕 16)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교학(華嚴敎學)을 펼쳤던 곳이다. 부석사라는 이름은 선묘설화1)에서 유래되었다.
부석사의 건물 가운데 본전에 해당하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은 고려시대의 건축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시고 있다. 서방 극락을 주재한다는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닌 분이라 하여, 다른 말로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도 한다. 무량수불을 모신 전각이므로 ‘무량수전’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신라 문무왕 대에 지어진 후 1016년(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에 의해 중창(重創)하였다. 이후 1916년 실시된 해체 수리 공사 때 서북쪽 공포(?包)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는, 1358년(공민왕 7) 왜구에 의해 건물이 불에 타버려 1376년(우왕 2)에 다시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무량수전 건물은 1611년(광해군 3)에 새로 단청(丹靑)하고 1969년에 보수한 것으로, 1962년 국보 제 18호로 지정되었다.
무량수전이 1376년에 재건되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이는 화재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대략 목조건물이 150년마다 보수된다고 여겨지므로, 무량수전의 건립연대는 13세기 초라고 할 수 있다. 전국에 남겨진 고려시대 목조건물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데, 부석사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서, 사찰 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라고 하겠다.

2. 부석사의 가람배치
부석사 가람배치의 특징으로는, 대지 전체가 여러 단의 석단으로 나뉘어 상승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석단들은 천왕문부터 무량수전까지는 10단, 회전문터부터는 9단이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십지론(十地論)’을 표상하였다는 설과, 정토신앙에서 말하는 ‘삼배구품설(三輩九品說)2)’의 상징이라는 해석이 엇갈린다.

참고 자료

김봉렬,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3》, 돌베개, 2006.
김봉렬, 《불교건축》, 솔, 2004.
김왕직, 《한국건축용어》, 발언, 2000.
안현미, <한국 사찰 단청에 관한 연구 : 봉정사 극락전 중심으로>,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이정수, 박원출, 조원영, 《테마가 있는 한국문화》, 선인, 1999.
임두빈, 《한 권으로 보는 한국미술사 101장면(선사시대 암각화에서 현대미술까지)》, 가람기획, 1998.
주남철, 《한국건축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문화유산, 《답사여행의 길잡이 - 경북 북부》, 돌베개, 2001.
문화재청 http://www.cha.go.kr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정보화시스템 http://www.chi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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