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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송가 (베토벤)번역의 이론과 실제

저작시기 2010.10 |등록일 2012.12.05 파워포인트파일MS 파워포인트 (pptx) | 19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독일어의 번역이론을 환희의 송가에 접목시킨 자료입니다.

목차

1.텍스트 분석의 내.외적인 요소
2. 독일어 문장분석
3. 일치단계
4. 번역단계
5. 한국어로의 재구성
6.번역비평

본문내용

1.텍스트 분석의 내.외적인 요소
1) 작가소개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쉴러 (1795.11.10~1805.5.9)
생애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 주의 마르바흐의 하급 군인의 집에서 태어났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신학을 전공해 목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영주(領主)인 카를 오이겐 공작의 명에 의해서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처음엔 법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졸업 후 슈투트가르트에서 하급 군의관이 됐다. 그 후 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으로서 슈투트가르트 연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생애
학생 시절에 그는 몰래 문학 작품을 탐독하며 습작을 했다. 철학 교수 아벨의 권유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은 것은 그에게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자비 출판한 처녀작 <군도>가 1782년 1월 13일 만하임에서 성공적으로 초연된 것을 계기로 그는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 후 연대 의무관이 되어 집필활동을 금지당했기에 공작의 저술 금지령을 피해서 그는 1782년 9월 22일 밤에 만하임으로 도주한다. 도피 방랑생활을 하면서 <피에스코의 반란>(1783), <음모와 사랑(Kabale und Liebe)>(1784)을 썼다. 한때 만하임 극장의 전속작가가 되었으나 중병을 앓고 사퇴한 후 쾨르너의 도움으로 <돈 카를로스(Don Carlos)>를 완성시켰다.

생애
1787년에 네덜란드 독립사를 연구, 인정을 받아 1789년 예나로 이주하여 예나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가 되었다. 그 후 미학, 철학, 역사에 관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여 생활의 안정을 얻고 역사와 미학 강의를 했지만 학생 수의 감소와 심병으로 얼마 후 사직했다.
1794년부터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친분을 나누었고, 같이 《die Xenien》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자주 만나서 문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많은 서신을 교환하며 공동 작업을 했다. 특히 1802년에는 쉴러가 예나에서 바이마르로 이사를 해 이들의 친교와 공동 작업은 더욱 강화됐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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