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생산방식의 역사

저작시기 2010.04 |등록일 2012.05.2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대량생산부터 셀생산방식 까지 생산방식의 역사의 모든 것

목차

1. about 대량생산
2. about 수공업
3. about 린생산방식
4. about 셀생산방식

본문내용

생산방식의 역사


수공업

우리나라에서 생산수단용, 생활수단용, 그리고 무기류에 이르는 다양한 도구의 제조 규모가 수공업의 수준으로 발전 한 것은 삼국시대의 왕도(王都) 관영수공업장 설치연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왕도의 관영수공업 조직은 원칙적으로 부역동원제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15세기 무렵 거의 완비되었다. 조선왕조는 왕실 및 관아용 물자 확보 책으로서 관영수공업제와 일반 백성으로부터의 공물징수제를 병행하였다.
그 결과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하나는 고려말기까지 그런대로 생업이 보장되어 있었던 각지의 소민들이 이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국 초에 발생한 왕실이나 관가의 방대한 수공업적 수요로 인하여 소민과 장인들은 지나친 수탈을 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견디지 못한 많은 장인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보장받고자 세력가인 신흥 사대부에게 노비로서 투탁하거나 지방 오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지닌 기량을 발휘하여 소규모의 수공업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법령을 제정하여 장인들을 통제하는 이른바 관영수공업의 정책이다. 당시의 수공업자들은 거주지 및 등록지에 따라 경공장(京工匠)과 외공장(外工匠)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경공장에 비해 외공장의 인원이 매우 적었던 현상은 당시의 수공업이 서울지방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장인들이 서울로 집중하면서 서울은 상공업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