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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쟁쿠르 전투

저작시기 2012.05 |등록일 2012.05.1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백년전쟁 중 하나인 아쟁쿠르전투이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체제는 프랑스군은 중무장 기사를 주력으로 하는 기사군 체제이었으며 영국군은 보병을 중심으로 한 용병대 체제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는 기사군대가 무리를 이루어 차례로 공격하는 전술을 자주 사용하였으며 영국은 기사군대 사이에 궁사들을 배치하여 궁사들을 보호하면서 상대의 기사군대 돌진을 저지하는 전술을 사용하였다. 중무장한 프랑스 군대는 중무장에 어울리는 석궁부대로 영국군은 장궁부대로 무장하였다. 프랑스군의 석궁부대는 1분에 2발이라는 느린 발사속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영국군의 1분에 10발이라는 석구에 비해 빠른 발사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위의 전술과 체제가 백년전쟁 당시 자주 사용하던 전술이었으며 아쟁쿠르 전투에서도 비슷한 전술들을 사용하였다.

아쟁쿠르는 북프랑스의 작은 마을이다. 이 해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칼레를 향하여 북상해 온 헨리 5세의 영국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프랑스군과의 전투로, 병력은 영국군 약 6,000명, 프랑스군 약 2만 명으로 추정된다. 수적으로 보면 훨씬 프랑스군이 우세하기에 프랑스군의 승리를 예상하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먼저 영국군이 프랑스 기병대에 도전하고, 프랑스군이 이에 대응하여 전면으로 진출했을 때 영국의 궁노수가 공격하여 기병들을 말에서 떨어뜨리고 보병이 돌격함으로써 영국군은 병력이 우세한 프랑스군에게 큰 승리를 거두었다. 프랑스군의 전사자와 포로가 약 7,000명인 데 비하여 영국군은 1,600명이었다. 이 전투 뒤에 영국군은 칼레를 점령하였고, 프랑스 황태자 샤를(뒤의 샤를 7세)을 옹립하려는 아르마냐크파(派)의 세력은 쇠퇴하였으며, 북프랑스는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네이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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