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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역사(프랑스 식민시대)

저작시기 2011.09 |등록일 2012.05.12 | 최종수정일 2014.06.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600원

소개글

베트남 역사 - 프랑스 식민시대 요약글

목차

없음

본문내용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형태
- 착취의 극대화 목적 ; 베트남 민족의 결속력 차단, 안정된 통치와 지배의 효율성을 고려한 지역분할 통치(박끼, 중끼, 남끼로 나눔)
-남끼 1859-1879까지 실시 / 참변소, 총(總), 사(社) 로 나누어 관리함
-1876 : 싸이곤(5개소구), 미토(4개소구) 빙롱(4개소구),밧싹(6개의소구) 등 4개의 구로 구성
-1877 : 싸이곤시를 세움
-보나르는 베트남의 법과 풍속을 유지시킨 가운데 지배의 극대화를 위하여 베트남인에 의한 베트남인 지배로 간접지배형식을 취하며 , 베트남인 관리는 프랑스인 장교가 담당함
-드라그랑디에르 이후부터 남끼에 대한 지배 공고화됨
1)대변인 : 남끼통독의 직속으로 프랑스외교특파원역할로 갑술조약의 실행을 감찰하는 기능을 담당하였고 1883년 대변인이 없어지고 박끼에 프랑스 정부의 대표로 후에 조정의 외교업무를 주재하는 총위원을 두었다.
2)총위원 : 후에 수도에는 총위원 밑에 주사를 두었는데 쭝끼에서 프랑스 보호정권을 대표하는 자로 조정의 국사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으나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왕좌 대면 할 수 있었고 이때 왕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거절할 수 없었고 총위원은 푸르니에조약까지 유지되었다.
3)총주사 : 1884년 푸르니에조약이후 북끼, 쭝끼에 프랑스 정부를 대신하고 박끼와 쭝끼의 민사, 군사, 외무 등 모든 권한의 실제수장으로 남끼의 통독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함
4)통사와 흠사 : 1886년부터 1889년까지 북·쭝끼 총주사에 직속되었고 쭝끼 흠사는 후에 조정의 모든 활동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임무를 담당함, 박끼의 통사 역시 베트남인 관리의 활동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업무 담당함
5)경략 : 후에 조정을 대신하여 전권을 행사 할 수 있는 경략을 박끼에 둠 (1886년 6월) 베트남 황제의 박끼 지배 권한을 단절시킴으로써 박끼를 쭝끼로부터 분리시키는 역할을 함.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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