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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의 성립과 운영 구조

저작시기 2012.04 |등록일 2012.05.0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일반적으로 세도정치란 ‘世道’의 의미에서 ‘勢道’의 의미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즉, 순조•헌종•철종 3대 60 여 년간 특정 소수 가문에 의한 파행적인 정치 운영 방식을 세도정치라고 하며 공통적으로 어린 국왕을 자리에 앉히고 외척이나 척신 가문들이 국왕권을 능가하는 권세를 누리다보니 여러 가지 부정부패가 만연되었고, 대표적으로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이 극에 달하다보니 이제 소극적 저항에서 적극적 저항의 형태로 민들의 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811년 홍경래의 난이 그러했고, 1862년 전국을 강타한 임술농민봉기가 그 양상을 잘 보여준다.

목차

1. 머리말

2. 세도정치의 성립
(1) 권세가의 권력 독점
(2) 왕권의 약화와 붕당의 퇴조

3. 세도정치의 성격
(1) 정치 참여층
(2) 권력의 주체
(3) 국정 인식과 정책

4. 세도정치의 운영 구조
(1) 비변사
(2) 중앙 군영
(3) 언로와 공론

5.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일반적으로 세도정치란 ‘世道’의 의미에서 ‘勢道’의 의미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즉, 순조•헌종•철종 3대 60 여 년간 특정 소수 가문에 의한 파행적인 정치 운영 방식을 세도정치라고 하며 공통적으로 어린 국왕을 자리에 앉히고 외척이나 척신 가문들이 국왕권을 능가하는 권세를 누리다보니 여러 가지 부정부패가 만연되었고, 대표적으로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이 극에 달하다보니 이제 소극적 저항에서 적극적 저항의 형태로 민들의 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811년 홍경래의 난이 그러했고, 1862년 전국을 강타한 임술농민봉기가 그 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본고에서 저자(오수창)는 기존의 학설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세도정치에 관해서 접근해 봄으로써 우리 역사 속에서 단순히 부정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세도정치에 대해서 조선 정치사 전반의 맥락적 과정 속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관해서 크게 세도정치의 성립, 세도정치의 성격, 그리고 세도정치의 운영 구조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

2. 세도정치의 성립
(1) 권세가의 권력 독점
원래 ‘世道’란 세상을 세상답게 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이 지켜 가는 길을 의미하여 주로 조광조, 정인홍, 송시열 등의 정치적 역할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었는데, 그와 구별하는 의미로 박제형이 『近世朝鮮政鑑』에서 ‘勢道’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후 일반적으로 ‘勢道政治’는 순조•헌종•철종 연간의 정치를 설명하는 용어가 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 유교적 왕정관념에 따라 국왕이 세도의 책임자였으나 16세기 후반 이후 士林이 정국 운영을 주도한 이후 송시열 단계에 이르러서는 ‘山林’이 세도의 중심축이 되었다. 조선 중기 붕당정치 하에서 勳臣과 戚臣에 대한 견제가 느슨해지고 노론에 의한 권력 독점 과정에서 산림세력과 왕실 외척 가문이 결합되는 파행적 정치형태가 등장하였다. 붕당과 정파 간의 경쟁과 대립이 격화되면서 훈척세력이 兵權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때 정조는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고자 왕권의 강화와 유교적 관료제의 정착을 추구하면서, 국왕 스스로 세도의 담당자이며 책임자로 나섰지만, 탕평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군주 중심의 정치 운영 질서를 하나의 체제로 정립시키는 데는 실패하였다.

참고 자료

오수창, <세도정치의 성립과 운영 구조>, 『한국사』32,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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