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삼국통일과 관련된 인물들

저작시기 2010.05 |등록일 2012.02.1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600원

* 본 문서는 한글 2005 이상 버전에서 작성된 문서입니다. 한글 2002 이하 프로그램에서는 열어볼 수 없으니, 한글 뷰어프로그램(한글 2005 이상)을 설치하신 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소개글

인물 중심으로 정리한 삼국통일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삼국통일과 관련된 인물들>

◎ 들어가며

◎ 삼국통일의 선봉장, 김유신

◎ 삼국통일의 토대를 쌓은 태종무열왕 김춘추

◎ 자주적 민족통합을 완수한 문무왕

◎ 백제 최후의 명장, 계백

◎ 마치며

본문내용

◎ 삼국통일의 선봉장, 김유신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 손이기도 한 김유신은 일촉즉발의 멸망 위기에서 신라를 구해내고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룬 신라의 영웅이다.(그래서 삼국사기 인물 열전에 첫 번째로 수록되어 있고 분량이 열전 열 권 중 세 권이나 된다.)
증조부이기도 한 구해왕 때 신라가 가야를 정복하면서 그의 가문은 신라 귀족에 편입되었지만 가야계라는 한계 때문에 권력의 중심에서는 밀려난 상태였다. 하지만 609년(진평왕 31년)에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이끌며 화랑정신을 기르며 신라 청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여동생 문희를 당대의 명문귀족이었던 김춘추와 혼인시켜 중앙정치로 발을 들일 수 있게 된다.
611년과 612년에 걸쳐 중악(中嶽)과 인박산(咽薄山)에서 삼국통일을 기원하는 수련을 한 후 국선(國仙)으로 임명되었고 629년(진평왕 51년)에는 낭비성 점령 작전에 출전하여 단독으로 적장을 죽이는 공을 세워 아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642년 백제 7개 성 점령, 643년 매리포성 구원, 647년 비담의 난 진압, 648년 대량성 탈환 및 12개 성 점령 등 수많은 공을 세우면서 이찬으로 승진하고 상주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摠管)이 되었다. 한편 642년 김춘추가 고구려로 원병을 청하러 갔다가 구금되자 결사대를 조직해 국경에서 무력시위를 벌임으로써 김춘추의 석방에 기여하기도 했다.
660년 7월 황산벌에서 계백의 5천 결사대를 5번의 전투 끝에 격파하여 당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는데 성공하고 663년 두솔성에서 백제부흥군을 제압하였다. 이후 665년 당 고종에게 봉상정경평양군개국공(奉常正卿平壤郡開國公)이라는 관직을 받게 된다. 한편 661년 12월 고구려를 공격하는 당군에게 군량미를 조달하기도 했고, 668년 9월에는 고구려 정벌을 위해 연합군 대총관으로 임명되었지만 노환과 왕명에 의해 수도에 남았다. 고구려 정복 이후 태대각간에 임명되었고 당을 몰아내고자 고군분투하다가 673년 7월 병사한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네이버 백과사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한국학중앙연구원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신라 왕조실록』, 웅진지식하우스, 2004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백제 왕조실록』, 웅진지식하우스, 2004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