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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묘제

저작시기 2011.04 |등록일 2012.01.3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신라의 묘제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신라의 고분
1. 초기의 고분
2. 중기의 고분
3. 후기의 고분
4. 통일신라시대의 고분

Ⅲ맺음말

본문내용

Ⅱ신라의 고분
1. 전기의 고분(3세기 후반~4세기 후반)
3세기 후반 이후 특정 목곽묘가 우월한 입지를 선정하고, 매장주체시설인 목곽 규모가 대형화되면서 철기와 토기 등의 유물이 다량으로 부장되는 후장과 더불어 무기가 특정무덤에 집중되고 순장이 이루어진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런 고분의 축조로 지배층들이 그들의 족적 유대를 강화하며, 그들의 기득권을 표현하는 등 여러 요소들이 분묘와 부장품에 반영되어 신라 고분 문화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4세기대의 신라 고분은 원삼국시대의 덧널무덤을 계승한 것으로서, 경주 조양동 ? 구어리 ? 황성동, 포항 옥성리, 경산 임당유적, 대구 비산동 등에서 발견된다. 목곽묘는 긴 묘광을 파고 그 안에 곽을 설치하였는데, 피장자의 발치 쪽에 딸린곽을 구분하고 여기에 토기 등의 생활용품을 부장한 무덤이다. 이것이 신라식 목곽묘이며 신라권역에서 많이 유행했다. 이 안에서는 철제무덤과 투구, 환두대도를 비롯한 많은 철제무기와 순장의 흔적이 발견되었다.4)
본래 목곽묘는 진한과 변한에서 비슷한 형태였으나 이 시기에 들어서 가야형 목곽묘와 신라형 목곽묘로 지역구분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역구분과 더불어 대형묘에 부곽이 등장하며 대형목곽묘에는 많은 양의 철기와 토기를 부장하는 후장습속과 아울러 순장습속이 나타난다. 이와 더불어 와질토기가 점차 사라지고 도질토기가 일반화되면서 김해-부산지역과 그 이외지역의 토기가 기종구성과 형태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양식분화가 일어난다. 그렇지만 이들 광역에 존재하는 집단들간에 생긴 유대관계는 찾아볼 수 없다. 경주-울산-포항-영천 등지는 경주형 목곽묘가 분포하는 지역인데 이를 통해 이들 지역에 존재하는 집단들을 통합한 정치체가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5)

참고 자료

한국고고학회, 2008,『한국고고학강의』, 사회평론
김원룡, 1999, 『한국의 고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김기웅, 1998,『고분』, 대원사
강인구, 2000,『한반도의 고분』, 아르케
홍보식, 2001,「6~7세기대 신라고분 연구」, 부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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