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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의 동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본 시적 경향

저작시기 2012.01 |등록일 2012.01.1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1920년대의 동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본 시적 경향

목차

1. 서론


2. 본론

1.1.동인과 동인지, 그들의 출현

1.2.이광수에 기대거나, 이광수를 밀어내거나

2.1. 문사에서 작가, 그리고 ‘모던한’ 예술가의 등장

2.2. 동인들에게 ‘예술’이란?

3.1. 창조적 폐허, 장미가 핀 마을의 하얀 호수

3.1.1. <창조>의 경우

3.1.2. <폐허>의 경우

3.1.3. <장미촌>의 경우

3.1.4. <백조>의 경우

3.1.5.<금성>의 경우

4. 결론


5. 참고문헌

본문내용

대표적인 1920년대의 3대 동인지라고 할 수 있는 <창조>, <폐허>, 그리고 <백조>와 <금성>의 발행기간은 각각 1919.2~1921.6, 1920.7.~1921.10, 1922.1~1923.6, 1923.3~1924.11)이다. 1920년대의 상황은 1919년 3월 1일의 사건 이후의 특색을 중심으로 조망해나가야 한다. 1900년대의 계몽의 기치를 들고 일본 등지로 유학을 떠난 유학생들이 3·1운동의 희망적인 전망과, 근대화의 열망 속에서 귀국하게 된다. 특히 3·1운동의-잠재적인- 성공은 일본에게 ‘문화통치’를 이끌어내며, 문화적 공간-특히 잡지나 신문-과 문화적 운동 등 여러 스펙트럼이 생겨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신문에서 활동하던 문인들은 지면과 대중에 예속되는 문학 활동을 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문화운동의 이름으로 다양한 층위의 담론들이 배치되고 활동들이 전개될 수 있었는데2), 일본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 흐름을 주도해나간 문학·예술적 영역이 동인지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그전의 <태서문예신보>의 존재가 있었지만, 계몽의 의도가 확연하게 나타난 잡지였다. <신보>의 문학관은 문학 자체의 본연을 위한 의도가 아닌 단지 ‘泰西’의 문학을 소개하고 알아간다는 점에서 확고한 문학적 인식이 담긴 잡지라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이것이 동인지와 <신보>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당대의 일본 유학생은 실력양성론과 민족개조론을 두 이론적 기둥으로 삼고, 개인의 인격완성을 목표로 하며 내적 개조의 중요성을 강조3)하게 된다. 일본 유학생들이 일본과 한국에서 마주친 근대화의 산물들, 근대의 문명들은 그들에게 근대적 예술에 대한 인식을 함께 불러 일으켰다. 바로 근대의 문명들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감수성’4)이 나타나게 되고, 이러한 감수성으로 근대적 예술 활동을 ‘실력양성론과 민족개조론’을 기반으로 펼쳐나간다. 하지만 1920년대의 문화통치 역시 일본의 간교한 통치술임을 인식하게 되고, 그들이 조선 땅과 조선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 하던 예술적, 문학적 이상이 서로 맞지 않게 되자 점차적으로 동인의 성향은 비관적인 모습으로 변하가게 된다. 자세한 양상은 <창조>, <폐허>, <백조>, <금성>를 논하는 부분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김행숙.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 소명출판, 2005.
조영복. 1920년대 초기 시의 이념과 미학. 소명출판, 2004.
진설아. 1920년대 동인지 문학 연구 -<창조>, <폐허>, <백조>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 석사학위논문), 2004.
최선미. 1920년대 동인지 문학의 예술인식 -<창조>, <백조>, <폐허>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 석사학위논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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