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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민족적 감정을 환기시키는,1930년대대중가요[1]

저작시기 2011.04 |등록일 2012.01.06 | 최종수정일 2014.05.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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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introduction)

2. 역사적 사실을 은유한「황성 옛터」
2-1.「황성 옛터」에 관한 일화들
2-2. 역사적 사실의 은유화와 카타르시스

3. 민족적 정서를 담아놓은 「목포의 눈물」
3-1. 이별과 눈물의 항구도시, 목포
3-2. 울분과 저항이 담겨있는 「목포의 눈물」

4. 결론(conclusion)

5. 참고문헌(reference)

※ 부록(appendix)

본문내용

1930년대 한국의 음반시장의 규모는 이백만 장이나 거래되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당시 이러한 음반의 영향력을 인식한 조선총독부는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음반을 감시 대상에 올려놓게 된다. 물론 그동안「치안법」을 적용하여 음반을 단속해 왔으나, 제조?판매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고 단지 소통되는 음반에 문제가 있을 때만 압수 또는 연주(감상)를 금지하는 정도였다.1) 곧 음반의 취체(取締)는 경찰시찰 권외의 문제였다. 그러나 유성기의 보급이 확대되고 음반이 대중화되면서 조선총독부는 보다 적극적인 검열제도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결국, 1933년 5월 22일 부령 제47호로 축음기「레코드취체규칙」을 공포하고, 6월 15일부터 경무국 도서과에서 단속을 시행하였는데, 취체규칙의 검열 기준은 ‘치안방해’와 ‘풍속괴란’이었다.2) 하지만 이 규칙은 이미 출반되어 유통되고 있는 한국의 모든 음반을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취체규칙이었다. 과거에 판매된 것도 장부를 압수하여 조사하였고, 유통되는 것 중 행정 처분된 음반의 재고는 전부 압수하였다. 취체규칙 발표 후 조선총독부는 경찰로 하여금 관내 음반 판매업자를 소집하여 취체규칙에 대하여 주지시키었고, 취체 처분된 음반은 판매 금지뿐만 아니라, 이미 음반을 구입한 자라도 공개적인 음반의 감상행위는 금지하였다.3)

참고 자료

최창호, 『민족수난기의 대중가요사』, 일월서각, 2000. p.132.
문옥배,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 예솔, 2004, p.283. 부록의 <표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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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근대성의 침략과 20세기 한국의 음악』, 북코리아, 2005, p.162.
이형대, 『일제시기 대중가요와 식민지 여성 현실』, 월인, 2005,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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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호, 『민족수난기의 대중가요사』, 일월서각, pp.70~71.
전지영,『근대성의 침략과 20세기 한국의 음악』, 북코리아, 2005, p.79.
W.Tatarkiewicz(손효주 역),『미학의 기본개념사』, 미진사, 1990, p.120.
오희숙, 『음악 속의 철학』, 심설당, 2009, pp.121~122.
이형대, 『일제시기 대중가요와 식민지 여성 현실』, 월인, 2005, p.131.
전지영,『근대성의 침략과 20세기 한국의 음악』, 북코리아, 2005, p.166.
이형대, 『일제시기 대중가요와 식민지 여성 현실』, 월인, 2005, p.142.
문옥배,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 예솔, 2004, p.152.
문옥배,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예솔, <악보14>「황성 옛터」
최창호, 『민족수난기의 대중가요사』, 일월서각, p.278. 악보(부록)「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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