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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내전

저작시기 2011.12 |등록일 2011.12.29 워드파일MS 워드 (docx) | 6페이지 | 가격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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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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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코소보 내전 개요
세르비아공화국 내에 있는 코소보는 알바니아계 주민이 90%이고 거의 무슬림이다. 때문에 구 유고연방 시절부터 공화국과 같은 정도의 자치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89년부터 세르비아공화국이 자치권을 축소하면서 독립운동이 치열해졌다. 90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92년에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한편, 코소보해방군(KLA)을 결성하여 무력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코소보해방군과 세르비아 치안부대 간의 무력충돌로 내전양상으로 발전하자 세르비아는 대규모 KLA 소탕작전을 펼친다. 이에 대해 유엔은 중재에 나서고, NATO는 민족청소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다는 이유로 세르비아에 폭격을 가한다.


코소보 내전 원인

코소보에 대한 세르비아의 집착은 단순히 영토 문제만이 아니다. 코소보는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중심지였다. 동방정교회의 교회도 여기에 세워졌는데, 14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받아 점령되었다. 세르비아의 수도가 있었던 지역이었던 만큼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코소보 전투(1389년)이다. 세르비아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희생하여 기독교 세계를 지켰다고 자부한다. 오스만 제국이 코소보를 점령하고 나서 더 이상 진군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고, 그대로 영토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오스만 터키는 코소보의 세르비아계 기독교도를 추방하고 알바니아계 이슬람교도를 정착시켰는데, 코소보에는 세르비아인들이 만들어낸 많은 유적지와 교회들이 밀집해 있어 세르비아인들에게 있어서는 성지로 여겨진다. 이런 역사 때문에 세르비아의 입장에서 코소보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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