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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답사보고서

저작시기 2010.09 |등록일 2011.03.21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태릉 답사 후 쓴 보고서입니다,,중간에 친구들 사진도 있어서 삭제했습니다. 교수는 ㅇㅈㅇ이였습니다

목차

I. 태릉과 강릉의 주인

II. 조선의 왕릉

III. 답사를 하며

IV. 참고문헌 및 사이트

본문내용

Ⅰ. 태릉과 강릉의 주인
태릉은 조선 제 11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이다. 봉분 아래에는 구름과 십이지신을 의미하는 방위신이 새겨진 병풍석을 둘렀다. 그 주위를 난간석으로 다시 보호하였고, 병풍석 위의 만석(滿石) 중앙에는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겨놓았다. 원래 십이간지가 문자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병풍석을 없애고 신상을 대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등장한 것인데, 여기에서는 신상과 문자가 함께 새겨져 있어 주목된다.
문정왕후는 중종과 함께 안장되기를 바랐지만, 잦은 침수 피해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단릉에 안장되었다. 문정왕후의 능에 여느 왕비들의 능에 주로 붙는 여성적인 글자가 아니라 ‘태(泰)’자를 붙여 태릉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정왕후가 가진 탁월함과 카리스마를 느끼게 해주는 한 부분이다.
▲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는 모습
문정왕후는 수렴청정 나이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성인이 될 일정기간 동안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국정을 대리로 처리하던 일을 말한다.
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왕비로, 조선왕조실록에서 가장 혹평을 받은 왕비라고 한다. 드라마 ‘여인천하’에 등장하기도 한 문정왕후는 중종의 왕비이자 명종의 모후로써 명종대에 수렴청정을 실시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추구하는 성리학의 기본 이념을 뒷전으로 한 채 독재를 하였으며, 또한 억불정책을 무시하고 불교를 숭상하였다. 그런 점에서 문정왕후는 조선시대 내내 남성 지배층에게는 불편하고 불쾌한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남성지배 관료층을 발아래 두고 자신의 권력과 왕권을 오롯이 지켰다는 점에서 탁월한 정치가로 평가 될 수도 있다. 역발상을 해보면 문정왕후의 독재 권력이 강했다는 점은 그만큼 문정왕후의 정치적 식견이 뛰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참고 자료

조선왕릉전시관 팸플릿
태릉&강릉 안내 팸플릿
http://navercast.naver.com/peoplehistory/koreanhistory/3092
http://100.naver.com/100.nhn?docid=96382
http://100.naver.com/100.nhn?docid=62415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C%88%9C%EC%99%95%ED%9B%84
http://taegang.cha.go.kr/
http://royaltombs.cha.go.kr/portal/introduce/introduce_01.jsp?mc=KP_01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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