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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 [칸트 업적과 인간관, 최고선과 도덕률]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11.02.21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윤리사상에 대하여 아주 세심하게 조사한 레포트 자료입니다. 참고 하시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차

1. 칸트의 생애
2. 인간관
3. 최고선
4. 도덕률

본문내용

1.칸트의 생애
칸트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럽이 격동기를 겪고 있던 시대에 살았다. 독일은 근대적 통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서민들이 거의 농노의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었으나, 로크나 루소의 자유주의 사상에 익숙해져 있고 영국의 의회제도와 프랑스의 시민혁명을 실감하고 있었던 때였다.
칸트는 1724년 4월 22일에 프로이센 대공국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가난한 마구상인 요한 게오르그라하의 11남매 중 넷째 (2남) 으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보다도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경건파 그리스도교 신자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1737년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고 회상하고 있다.
그가 8세가 되던 1732년부터 8년간 종교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740년 가을 16세 때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입학해서 구두방을 경영하는 큰 아버지의 도움과 아르바이트로 겨우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소원에 따라 목사가 되려고 신학을 전공했으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유능한 철학교수 크누첸의 강의에 감화를 받고 수학, 철학, 물리학 등의 연구에 열중했다.
그 때 그는, “진리의 발견을 방해하는 자는 뉴턴이던 라이프니츠든 서슴치 않고 비판하겠다. 나는 이미 나의 갈길을 선택하였다. 이제 나의 길은 아무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자신의 갈길에 대해 자신에 꽉 차 있었다.
1746년에 5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1755년 ‘불에 관하여’ 라는 논문을 제출할 때까지 9년동안 호구지책으로 상류층 가정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하였고, 그 해 가을 모교에서 시간강사 자리를 얻은 후, 15년 동안 시간 강사로서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된다.
급료가 너무 적어 15년 동안 수학, 물리학, 논리학, 지리학, 인류학, 윤리학, 철학, 시학, 교육학, 신학 등 많은 강의를 하게 된다.
수입이 적어 끼니를 거르는 와중에서도 병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 매월 20타아르의 돈을 저축했으며, 나중에는 이자를 불려나가면서 돈을 모으게 되고 검소와 절약으로 만년에는 풍족하게 살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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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테일러, 김영진 역, 윤리학의 기본원리, (서울: 서광서, 1988)
-미카엘 란트만, 진교훈 역, 철학적 인간학 (사울: 경문사, 1988)
-찰스 린블럼, 주성수 역, 정치와 시장, (서울: 인간사항, 1989)
-제임스 V. 맥글린, 쥴즈 J. 토너, 안명옥, 임기석 옮김, 현대윤리사상 (서울: 박영사, 1985)
-스털링 P.램프레히드, 김태길, 윤명노, 최명관 역, 서양철학사 (서울: 을유문화사, 1984)
-진교훈, 철학적 인간학연구 (서울: 경문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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