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대전 근대건축물 답사 : 잃어버린 뾰족집을 찾아서

저작시기 2010.11 |등록일 2011.02.08 파워포인트파일MS 파워포인트 (ppt) | 12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사라져가는 대전지역 근대건축물 중 등록문화재 제377호 대흥동 ‘뾰족집’에 대해서 답사와 조사를 바탕으로 만든 프리젠테이션 자료입니다.

목차

1. 대전의 역사
2. 개요
3. 일본가옥의 특징
4. 평면분석
5. 입면분석
6. 답사사진
7. 고찰

본문내용

등록문화재 제377호 대전 대흥동 ‘뾰족집’
철도가 놓이면서 넓은 들로 이루어져 `한밭`이라 불렸던, 작은 촌에 불과했던 대전은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대전면(1914년)→대전읍(1931년)→대전부(1935년)`로 확대되었고 관공서, 학교, 금융기관, 군부대 등이 새로이 설립되거나 이전해오면서 과거 `한밭`의 모습은 사라지고 근대도시로의 완전한 변모를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1905년에 일본인 100여명이 대전역 인근에 거주하게 되면서 일본식 가옥이라든지 점포, 은행 등의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되고 이후 일본인들은 급증하게 된다. (조선총독부의 자료를 보면 1926년 이전까지는 대전에 살고 있는 일본인의 수가 한국인보다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음)
처음 대전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은 경부선 철도를 놓기 위해 일했던 기술자나 노동자들이었으나 점차 대전이 개발될 것을 기대했던 일본인들이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대전으로 이주했으며, 1915년 호남선의 개통과 더불어 더욱 더 다양한 계층과 신분의 일본인들이 유입되었다. 일본인들은 처음에는 대전역 주변의 정동, 중동, 원동 등에 일본식 주택을 짓고 모여 살기 시작했으나, 1932년에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개발된 선화동, 용두동, 은행동 등지까지 주거지역을 넓히게 된다.
이렇게 대전이라는 도시는 철도의 개통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이주해 살게 되면서 도시가 계획되고 발달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 대전의 원도심 지역에 살았던 일본인 주거의 흔적들은 해방과 더불어 도심지의 확장과 개발로 인해 대부분 사라졌으나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몇몇 주거 건축물이 있다.

<중 략>

무엇이든 ‘역사’라 불리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지만 인간의 욕심 앞에서 사라져가는 우리의 역사를 볼 때면 안타까울 뿐이고 이를 관리하는 기관뿐만 아니라 주변 시민들의 관심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본 과제를 통하여 현재는 잃어버린 뾰족집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고 뾰족집 뿐만 아니라 대전시 근대건축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문화재의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근대건축문화재 활용 방안에 관한 연구 (홍익대 학위논문)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서적)
중보일보 ‘대흥동 뾰족집’관련 동영상
대전 근대건축 자문위원회 인터넷자료(http://cafe.naver.com/cmand)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