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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육사상가들의 업적/생애 및 교육사상에 대해서

저작시기 2008.10 |등록일 2011.01.31 한글파일한글 (hwp) | 24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교육의 역사적 철학에 관한 여러 교육사상가들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교육사상에 대해 정리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최충(983~1068)
2. 마르틴 루터(1483~1546)
3. 율곡 이이(1536~1584)
4. 다산 정약용(1536~1584)
5. 피히테(1762~1814)
6. 페스탈로치(1746~1827)
7. 한서 남궁 억(1863~1939)
8. 도산 안창호(1878~1938)
9. 남강 이승훈(1864~1930)

본문내용

1. 최충(983~1068)
1) 최충의 교육사상과 업적
최충은 학문을 좋아하고 탁월한 풍모와 건강을 유지하였다. 그는 제 7대 목종 8년(1005)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이후 현종, 덕종, 정종, 문종의 5대를 거친 고급관리였으며, 덕망가였다. 문종 대에 이르러 그의 벼슬은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나이 70이 되어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간청하니 왕은 상을 내리며 위로하기를 “경은 유교학문의 표준이고 문장으로 나라를 빛냈으며 국정을 다스린 공적이 크다.”고 칭찬하였다.
당시의 조정이 인재양성교육에 소홀하고 학풍이 성하지 못하였으므로 최충은 나라를 걱정한 끝에 후학을 교도하기 위하여 사학을 열어 열과 성으로 교육에 전력하다가 85살로 일생을 마쳤으며, 그는 대교육가로서도 명망이 높았다.
그가 세운 사학인 구재학당, 즉 최공도에서는 5경과 3사를 중심으로 해서 시, 무, 사, 장 등의 시문제술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성리학이 수입되기 전에 유교교육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관학인 국자감의 교육내용을 가르쳤으며, 과거시험의 내용이었다. 최충의 문도에서 유학생들은 일상생활의 예의에 있어 진퇴유의하고 장유유서한 덕행을 중요시 하는 교육을 충실히 함으로써, 국민교화와 도덕순화를 중요시하였다. 그는 학생을 가르침에 있어 “사는 세력을 가지고 나와 관에 오르면 끝을 잘 마치는 자가 드물다. 그러나 문도로서 출세하면 경사가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다행히 문으로서 현달하였으니 깨끗한 지조로 삼가 세상을 마치려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문과 덕행을 강조하는 그의 교육사상과 활동에 대해서 “동방의 학교가 일어난 것은 최충으로 인하여 비롯된다.”고 한 것처럼 과연 그를 본받아 뜻있는 공신과 유신들이 다투어 교육활동에 열성을 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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