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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지역 답사 `어변당``사명대사생가지``밀양영남루``예림서원`

저작시기 2004.10 |등록일 2011.01.30 한글파일한글 (hwp) | 16페이지 | 가격 300원

소개글

밀양 지역 문화 유적지 4곳의 정보 및 답사기 입니다.

목차

1. 어변당
2. 사명대사생가지
3. 밀양영남루
4. 예림서원

본문내용

조선 전기의 무신 박곤 장군이 무예와 학문을 공부하던 별당이다. 그는 밀성 박씨 태사공과 박언부의 11대손으로 연상으로 연상리를 이주해온 박의번의 둘째 아들로 고려 공양왕 3년 (1391년)에 태어났다.
박곤은 무과에 응시하여 초시, 복시, 전시를 두루 거쳐 21세에 장원급제하였고 세종 1년(1490년) 최윤덕 장군의 막하로서 대마도 정벌 및 남해 왜구를 토벌하였고, 34세인 세종 11년(1429년) 순무사로 북방의 성들을 살피고 국방정책의 입안에 참여 하였다. 그 후 공조, 호조, 예조참판 및 한성판윤등을 거쳤고, 특히 축성을 맡거나 진지를 심사하고 국방의 자문에 치중하였다. 세종 18년 (1436년) 명나라 영종 즉위시 하례사(하례사)로 갔다가 황제가 그의 사람됨을 보고 벼슬을 내렸을 때 거절하였는데, 대신 미인 3인을 얻어 그곳에 서 일걸, 이걸, 삼걸)의 세 아들을 낳았고, 이들은 표씨의 성을 얻어 중국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귀국후 다시 한성판윤을 지냈으며, 40대 주빈에서부터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 돌아와 연못에 어변당을 짓고 여기에서 여생을 마쳤다. 중종(1506∼1544) 때 밀양부사 이휘영이 고쳐 세웠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이 건물은 박곤이 중국에서 돌아온 1440년경에 건축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1841년에 다시 중수하였는데 이호윤이 쓴 그때의 중수기를 편액에 기록하고 있다. 배치는 앞에 방지를 두고 그 폭에 맞추어 3칸의 어변당이 서향하여 있고, 그 앞에 박곤이 심었다는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한 그로가 역사를 말해주며 서 있다.

참고 자료

http://www.ocp.go.kr
http://www.dansan.es.kr/si006/hakjaloy/mooan.htm
http://kimdy.kri.re.kr/travel/2001/20010114milyang/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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