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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재조명

저작시기 2011.01 |등록일 2011.01.30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본문내용

1. 김부식에 대하여 대게는 보수적 사대주의자로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올바른 이해를 논리적으로 서술하시오.
‘지금의 학사대부가 ... 진한역대의 사기에 대하여는 자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사실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알지 못하니 매우 유감된 일이다.’
위는 김부식의 진삼국사기표의 일부분이다. 삼국사기에는‘중국의 문헌에는 우리의 역사를 지나치게 간략히 서술하고 있어 다시 서술해야 하며 왕과 신하, 백성의 잘잘못을 드러내어 후대에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라는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김부식에 관한 논란은 아직도 끊이지 않는다. 대게는 보수적 사대주의자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주장은 단채 신채호 선생이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을 묘청의 서경천도사건으로 평하면서 김부식은 사대주의자라는 평을 내린 후부터 우선시 되었다. 현재에도 국사교과서에는 이러한 주장이 담겨있다. 김부식은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보수적 사대주의자로, 묘청을 풍수지리사상에 바탕을 둔 개혁적 자주주의자로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다소 객관적인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우선 그 당시 시대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김부식과 묘청, 그리고 왕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인종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해 이자겸의 난 등을 겪으며 어지러운 정국을 겪는다. 이러한 이자겸의 난은 척춘경을 이용하여 일단 진압하였으나 국내외 정세는 극도로 불안하였다. 안으로는 이자겸의 난으로 궁궐이 불타오르고 왕권이 흔들리고 있었으며 밖으로는 금의 압력을 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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