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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전 전문

저작시기 2010.10 |등록일 2011.01.26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박씨전 전문입니다.

본문내용

인조대왕 때 이득춘이라는 사람이 있어 벼슬이 이조참판 홍문관 부제학에 이르렀는데 그는 부인 강씨와의 사이에 남매를 두었으니 아들의 이름은 시백이요, 딸의 이름은 시화였다. 시백의 나이 16세요, 시와의 나이 13세가 되었을 때 왕이 이참판에게 강원 감찰사를 제수하시니 공이 부인과 시화는 집에 두고 시백만 데리고 임지로 부임하여 시백에게 시서를 강론하고 학문을 지도하였다.
이 때 금강산에 박현옥이라는 선비가 있으니 별호를 유점대사라 하는데 도학에 능했다. 그는 유점사 근처에 비취정을 짓고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취 선생이라 하고 혹은 유점처사라 부르는데, 그에게는 시집가지 않은 딸이 있었다. 이참판이 유점처사의 딸을 시백의 배필로 삼기로 했다.
세월이 흘러서 이듬해 봄철이 되자 왕께서 이공에게 벼슬을 돋우어 이조 참판 겸 세자빈객을 제수하고 조정으로 불러 `짐을 도우라`는 분부를 하셨다.
이럭저럭 박처사와 상약한 일이 다가왔으므로 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에 이르러 박처사 집을 찾아 아들의 혼례를 올리고, 박처사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즐거워하는데 신랑 시백이 신방에서 뛰어나왔다.
"아니 너는 왜 신방에서 뛰어나왔느냐? 그런 경거망동으로 나를 욕되게 하려느냐?"
"소자가 들어갔을 때는 신부가 없더니, 나중에 들어왔는데 마치 무서운 천신의 끔찍한 괴물 같은 여자라 경악하였습니다. 그런데 몸에서 더러운 냄새까지 진동하여 토할 것만 같아서 급히 나왔습니다."
이판서는 깜작 놀랐으나 아들의 경솔하고 무례함을 책망했다. 시백은 부친의 명이 엄격한지라 다시 신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신부를 다시 보기가 싫어서 닭 울기가 무섭게 외당으로 달려나와서 우울하게 날을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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